항목 ID | GC01400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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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內院寺 |
영어음역 | Naewonsa |
영어의미역 | Naewon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291[내원로 207]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조원영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 소속 사찰.
[개설]
내원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전국적으로 대표적인 비구니 수도 선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용연리 경부고속국도 위를 지나는 육교에서부터 내원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6㎞ 길이의 계곡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천성산 내원사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81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립경위 및 변천]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으며,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창건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673년(문무왕 13) 원효가 동래군 불광산에 있는 척판암(擲板庵)을 창건하여 주석하던 중, 당나라 태화사의 1,000명 대중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알고 ‘해동원효척판구중(海東元曉曉擲板救衆)’이라고 쓴 큰 판자를 그곳으로 날려 보냈다.
그곳 대중들이 공중에 떠 있는 현판을 신기하게 여겨 법당에서 뛰쳐나온 순간 뒷산이 무너져 큰 절이 매몰되었다. 이 인연으로 1,000명의 중국 승려가 신라로 와서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 원효가 그들이 머물 곳을 찾아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산신이 마중을 나와 현재의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다. 이에 원효는 대둔사(大芚寺)를 창건하고 89개 암자를 세워 1,000명을 거주시켰다. 그리고 천성산 상봉에서 『화엄경(華嚴經)』을 강론하여 1,000명의 승려를 오도(悟道)하게 하였다.
이때 『화엄경』을 설한 자리는 화엄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중내원암에는 큰 북을 달아놓고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였다고 하여 집붕봉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1,000명이 모두 성인이 되었으므로 산 이름을 천성산이라 하였다 한다. 그 뒤 1646년(인조 24)에 의천대사가 중건하였고, 1845년(헌종 11)에 용운선사가 중수하였으며, 1876년에는 해령선사가 중수하였다.
1898년에 유성선사가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고 절 이름을 내원사로 개칭하였다. 이때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라 이름 붙인 이후 선찰(禪刹)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경허선사의 법제자인 혜월선사가 조실로 주석하면서 운봉선사, 향곡선사 등 한국 선종사(禪宗史)의 맥을 잇는 많은 선승(禪僧)을 배출한 도량이 되었다.
6·25전쟁 때 산속에 숨어 있던 공비들의 방화로 완전히 소실된 뒤 1955년에 수덕사(修德寺)의 비구니 수옥(守玉)이 5년 동안에 걸쳐 13동의 건물을 재건하여 현재는 독립된 비구니 선원으로 새롭게 중창되었다.
[현황]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산내 암자로는 미타암(彌陀庵), 성불암(成佛庵), 금봉암(金鳳庵), 원효암(元曉庵), 조계암(曹溪庵), 금강암(金剛庵), 내원암(內院庵), 안적암(安寂庵), 익성암(益聖庵), 노전암(爐殿庵) 등이 있다.
[관련 문화재]
내원사는 전통사찰 제7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다른 문화재로는 보물 제1734호 양산 내원사 청동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6호 양산 내원사 아미타삼존탱, 문화재자료 제342호 양산 내원사 석조보살좌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