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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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警省樓址 |
영어의미역 | Gyeongseong Palace Site |
이칭/별칭 | 폐문루(閉門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327-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영옥 |
성격 | 누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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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건물 건립시기/일시 | 조선시대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327-2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옛 양산군 관아 터에 있던 조선시대 폐문루 터.
[변천]
경성루는 조선시대 양산군 관아에 있던 폐문루(閉門樓)로서 새벽과 밤에 취타(吹打)하여 관문을 열고 닫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성루가 건립되고 없어진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0년(철종 11) 가을 양산군수 이휘정(李彙廷)이 부임하여 폐문루가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황을 보고 중수하여 경성루로 명명한 사실만이 전한다.
1861년(철종 12) 이휘정이 쓴 「경성루중수기(警省樓重修記)」에 의하면, 이휘정이 퇴락한 폐문루를 옛 제도대로 수선하여 완공하자, 군민이 이휘정에게 누각의 이름을 명명하고 편액을 달아줄 것을 요청하여 경성루라 현액하고 그 뜻을 풀이했다고 한다. 이휘정은 국가가 아침 저녁으로 취타하는 것은 나팔과 북소리에 울고 웃는 민정(民情)을 살피라는 취지도 들어 있으니, 목민관(牧民官)은 이 점을 스스로 깨우쳐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며 아름다운 덕화(德化)를 위해 힘써야 한다는 뜻에서 이 누각을 경성루로 명명했다고 한다.
[위치]
경성루는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327-2번지 옛 양산군 관아 터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중앙동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현황]
현재 경성루는 남아 있지 않고, 양산군수 이휘정이 지은 「경성루중수기」가 『양산군지』와 『양산의 누정재지』에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폐문루는 경향(京鄕) 각지에 있었으나, 경성루만큼 위정자(爲政者)의 애민(愛民) 정신을 잘 나타내주는 명칭은 드물다. 경성루는 개문(開門)과 폐문(閉門) 시각을 알리는 음악 소리에도 흥을 내거나 슬퍼하는 백성의 형편을 살피고 염려하여 올바른 관정(官政)을 펼치도록 경계하는 목민관의 자성(自省)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 점에서 경성루는 다른 폐문루와 다른 특색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