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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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耕堤祭壇 |
영어의미역 | Gyeongje Altar |
이칭/별칭 | 치등제단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라 |
성격 | 제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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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현대식 대리석 건물 |
건립시기/연도 | 2003년 |
관련인물 | 오천수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나주오씨의 제단(祭壇).
[개설]
나주오씨의 제단으로 주위에는 나주오씨 조상묘가 있다. 이전에는 단의 이름을 치등제단(治登祭壇)이라고 하였다.
[건립경위]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는 나주오씨의 집성촌이다. 중시조인 진사공 오속규의 후손인 오손을 일대로 하여 8세 오명한이 울산에 입거하고 12세 오세윤에 이르러 양산에 이거하였다. 이후 양산에서 300년 동안 나주오씨의 세거지로서 자리를 잡았다. 나주오씨의 인물로는 보문각예문관대제학 오중달, 밀직부사 오맹손, 참의 오명한 등이 있다. 이 제단은 2003년 후손 오천수가 중심이 되어 건립하였다. 이때의 제단문은 다음과 같다.
“영남 명지 양산의 상북면 외석리는 태백의 정기가 함초롬이 응집한 길지이니 즉 나주 오문의 삼백년 세거지이다. 중조 진사공 휘 속규의 후손 중랑장공 휘 언께서 기일세하여 2세 휘 탁진께서 호 송은당으로 파조이시고 3세 휘 중달께서 보문각 예문관 대제학이요, 4세 휘 맹손께서 밀직부사 괴산으로 이거하셨다니 8세 휘 명한께서 참의로 병자호란 시에 입울산하여 세거하시다가 12세에 이르러 다시 이곳 양산으로 이거하셨다.
입향조이신 휘 세윤의 자는 덕의요, 호는 경제이시니 고 휘 필신께서는 수가선동추요, 비는 밀성 박씨라. 공께서는 호학성려하여 벼슬이 대사간 증좌승지에 이르시고 배위는 숙부인 밀성 손씨이시니 이 단의 주위이시다. 자 휘 경계는 자 군향으로 음첨지중추시고 배는 창원황씨이시며, 장자 휘 순한은 자 사현으로 배 청주한씨요, 손 휘 주응의 자는 성명이요, 배는 김해심씨, 후배는 평산신씨이시니 1남 휘 욱환 생하셨는데 자는 원복이요, 배는 김해김씨이시다.
첨추공의 차자 휘 오한은 자 사실인데 음직 도사이시고 배 학성이씨이시니 이자를 두셨다. 장자 휘 주연은 자 성안이시며 배 남양김씨로 이남을 생하시니, 휘 현환의 자는 화준이요, 배는 달성서씨이시며, 휘 길환은 자 화선이며 배는 청도김씨이시다. 도사공의 차자 휘 주원은 초휘 재주, 자 성필이니 증통정돈녕도정이시고 배 함안조씨이시다.
도정공께서 3남 2녀를 두시니 휘 명환께서 초휘 명진, 자 수백, 호 죽재이신데 음 통정대부 의금부 도사를 배수하고 통례원 좌통례로 승차하셨는데 학문과 경사에 능통하시었다. 배위는 숙부인 밀성박씨이다. 도정공의 차남 휘 중환은 초휘 명중, 자 공백으로 배 달성서씨, 후배 김해김씨요, 3남 휘 준환의 초휘는 명준, 자 경백으로 배는 풍산홍씨이다.
이제 매년 세향을 모심에 각위 묘소가 분산되어 후손들의 번다함이 있던 차에 입제각현조양위 분들의 제단을 수건하기로 종의를 모으고 여기 도사공 묘역에 터를 잡아 일을 마치니 없었던 것이 새로 잊혀져 가는 모선의 마음이 다시 일어남이라. 진실로 조선의 향기 높음이 스스로 신명의 보호를 받음이요, 인손의 효모지성이 하늘을 감동케 함이 아니면 어찌 이루었으리요. 우리 가문의 대대손손 진흥이 이 제단을 기점으로 크게 일어나리로다.”
[형태]
쇠로 만든 작은 여닫이문이 있고, 담장은 붉은 벽돌로 쳐져 있다. 잔디 마당에 장명등이 좌우에 한 기씩 있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리석으로 만든 평평한 네모 모양의 작은 제단이 있다. 제단 위로 나주오씨의 조상묘가 있는데,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는 나주오씨의 집성촌으로, 입향조인 오세윤 이래 300여 년 동안 지역의 중요한 성씨 집단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위상에 걸맞게 여러 행사를 통해 나주오씨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