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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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山北亭里古墳群 |
영어의미역 | Tumuli in Bukjeong-ri, Yangsan |
이칭/별칭 | 북정리 고분군,북정동 고분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 697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박광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양산 북정리 고분군 사적 제9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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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양산 북정리 고분군 사적 재지정 |
성격 | 고분군 |
양식 | 수혈계 횡구식 석실묘 |
건립시기/연도 | 신라시대 |
소재지 주소 |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 697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위치]
양산 북정리 고분군은 양산IC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으며, 경부고속도로 서울 방향 동편 북정리 주택단지의 동부아파트 뒷구릉에 위치한다. 양산시 동북쪽에 있는 해발 320m의 성황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저평한 구릉상에 대형과 소형 고분들이 분포한다. 대형분은 능선의 정상을 따라 분포되어 있으며, 1920년 일본인에 의해 봉분 형태가 뚜렷한 18기에 대해 호수가 부여되었다. 소형분은 주로 산기슭쪽에 밀집되어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양산 북정리 고분군은 1920년 일본인 오가와 게이기치[小川敬吉]에 의해 부부총(夫婦塚)[10호분]에 대한 발굴 조사가 있었다. 그후 1990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부부총이 재조사되어 수혈계 횡구식 석실묘인 것을 확인하였으며, 대형 고분군 아래에 있는 소형 고분들에 대한 발굴 조사가 실시되어 총 24기의 수혈계 횡구식 석실묘가 확인되었다.
[형태]
부부총과 도굴되어 묘제를 확인할 수 있는 고분군의 구조는 대부분 수혈계 횡구식 석실묘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 1990년에 발굴 조사된 수혈계 횡구식 석실묘는 장축을 기본적으로 남북 방향으로 하며, 횡구부를 북쪽 또는 남쪽에 마련하였다. 석실 평면형은 고식이 세장방형(폭:장축=1:3 이하)을 띠고 있었으며, 신식일수록 장축에 비해 폭이 넓어지는 장방형으로 변하였다.
[출토유물]
부부총에서는 금동관·금제 이식·목걸이·팔찌·반지·과대·요패·금동 신발·대도·철솥·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일본 국립 동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0년에 발굴 조사된 고분에서는 유개고배·유대장경호·파배·유대발·철겸·철촉·소도자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현재 양산 북정리 고분군은 일부 고분이 복원되어 있으며, 그 밖에는 모두 주택단지로 바뀌었고 산기슭까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입구에는 산불 관리 초소가 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9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양산 지역은 현재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고대 문화 유산이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형과 소형의 봉토분이 남아 있는 양산 북정리 고분군은 양산의 역사 복원에 중요한 유적이다. 대형 고분군은 5세기 양산의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상당한 정치적 세력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형 고분군은 위쪽에 분포하는 대형 고분군에 이어서 축조된 고분군으로 봉분의 크기가 작고 출토 유물도 부부총에 비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 소형 고분군의 중심 축조 연대는 대형 고분군보다 늦은 6세기다. 이 무렵 양산은 김해의 금관국(金官國)이 532년 신라에 투항하면서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강력한 정치 세력이 필요 없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