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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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秉翰 |
영어음역 | Jeon Byeonghan |
이칭/별칭 | 전병익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은정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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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 |
성별 | 남 |
생년 | 1901년 1월 19일 |
몰년 | 1961년 6월 26일 |
본관 | 정선 |
대표경력 | 양산청년회 집행위원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정선(旌善). 병한(秉翰)은 별명이고, 본명은 전병익(全秉翼)이다.
[활동사항]
전병한은 1915년 3월 25일 양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는데(제3회), 엄주태(嚴柱泰)·서상근(徐相根) 등이 동기생이다. 엄주태·전병건(全秉健)이 주도한 양산만세운동의 모의에 동참하여, 1919년 3월 27일 양산장날을 기해 3,000여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하였다. 이튿날 체포되어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의 선고를 받고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원심대로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7년 6월 8일 김기오(金基午)·정진호(鄭進浩)·백룡관(白龍寬)·전이풍(田二豊)·권연구(權淵龜)·김룡호(金龍浩) 등과 함께 양산청년회의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