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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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鄭氏 |
영어의미역 | Dongnae Je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집필자 | 정은정 |
세거지 |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동면 개곡리|원동면 화제리|상북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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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1883년(고종 20) |
성씨시조 | 정회문(鄭繪文)|정지원(鄭之遠) |
입향시조 | 정유석(鄭有錫) |
[정의]
정회문을 시조로 하고 정유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개설]
동래(東萊)는 현재 부산(釜山)과 양산(梁山)의 일부 지역을 차지했던 옛 행정 구역으로 경상남도 남동단에 위치하고 있다.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냈다고 하는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보윤공(甫尹公) 정지원(鄭之遠)을 기세조(起世祖)로 하여, 후손들이 세거지인 동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 오고 있는 성씨이다.
[연원]
동래정씨는 본래 신라 육부촌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白虎)의 후손이다. 『동래정씨경신보』 총록(總錄)에 따르면 서기 32년(유리왕 9) 지백호가 정씨로 사성(賜姓)되어 경주(慶州)를 본관으로 하였다가 그 뒤 동래로 분적(分籍)되었다고 한다. 동래정씨의 시조인 정회문에 관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족보에서는 정지원을 1세로 하고 정회문은 권두(卷頭)에 따로 기록한다고 하였다. 이는 계대(繼代)가 확실한 정지원을 기세조(起世祖)로 하고 시조는 정회문으로 하되, 그 사이의 소목(昭穆)이 분명치 않아 책머리에 실린 것이다. 문안공(文安公) 정항(鄭沆)의 묘지(墓誌)에 정지원과 그 아들 정문도(鄭文道), 손자인 정목(鄭穆)까지 3대만 기록된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한다.
[입향경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사는 정준영이 제공한 가보(家譜)에 따르면 입향조는 28세손 정유석(鄭有錫)으로 1883년(고종 20) 입향 이래 그 후손이 33세손까지 살고 있다.
[현황]
정유석의 후손이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14호가 산재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동면 개곡리, 원동면 화제리에 의사(義士) 정호의(鄭好義)의 후손이, 내포리에 진사(進士) 정지택(鄭志宅)의 후손이, 상북면에 전서공·참의공·동지공의 후손 약 300여 호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