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2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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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澤壽 |
영어음역 | Gim Taeks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홍찬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활동한 국회의원.
[활동사항]
김택수는 1926년 9월 10일 경상남도 부산에서 출생하였다. 1946년 경남고등학교, 195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경남수직공업주식회사 전무, 경상남도 체육회 회장, 경일중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제3공화국 출범 당시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1963년 김해 지역에서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당내 핵심 인물로 활약하였다.
1966년 아시아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 겸 세계아마추어복싱연맹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김해 지역에서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특히 삼선개헌의 강행을 저지하던 당내 김종필(金鍾泌) 계열의 중진 인물이었으나, 1969년 민주공화당 원내총무직에 내정됨으로써 개헌 파동에 적극 개입하기도 하였다.
1971년 대한체육회 회장 겸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직을 맡아 한국 체육계를 주도하였다. 1973년 소련 모스크바 세계대학생경기대회 한국대표단 단장, 1974년 국민체육진흥재단 이사장, 1975년 세계아마추어복싱연맹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1977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었다.
이후 공화당 정권 내에서 선이 굵은 정치 역량을 발휘하며, 1978년 12월 경상남도 김해·양산지역구에서 제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됨에 따라 양산 지역에서 활발한 정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81년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1983년까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집행위원 등 체육인으로서만 활동하다가 생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체육계에 큰 행적을 남긴 공로가 인정되어 대한민국체육훈장 청룡장, 국제올림픽위원회 공로훈장 은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2001년 제9회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상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