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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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교번 마을 덕진교에 얽힌 이야기. 주막을 운영하는 덕진이라는 여인이 죽어서 새로 부임한 원님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모은 돈으로 다리를 놓아 달라 부탁하는 이야기이다. 원님은 덕진의 부탁대로 다리를 놓고 다리에 덕진의 이름을 붙였다. 변남주가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 주민 서동열에게서 2012년 12월 11일 인터뷰 채록하였다. 덕진면 덕진리에 있는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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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전해오는 최지몽에 얽힌 이야기. 「별을 보고 천기를 점친 최지몽」은 최지몽의 일대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천기를 읽을 줄 아는 최지몽은 그 덕분에 벼슬을 하지만 겸손하지 못해 왕의 미움을 산다. 하지만 다시 중용되어 정부의 요직에 오른다.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907년 최상흔(崔相昕)의 아들로 태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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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 오는 재주 많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 「양 군수와 참한 소실」은 우연히 맺은 인연을 잊지 않고 혼인한 여자가 결국 남편의 사랑을 받고 훌륭한 아들을 낳아 키운다는 이야기이다. 1972년 영암군 향토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영암군 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성종(成宗)[1457~1494] 때 영암 군수로 부임한 양희수가 일행과 함께 장성의 한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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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 때 문신 김종직이 영암 지역을 순찰하던 중 월출산을 바라보며 지은 한시. 「월출산」은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조선 전기 영남학파의 종조(宗祖)인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지은 한시이다. 말년에 전라도 관찰사로 영암 지역을 순찰하던 중 월출산의 정상을 바라보며 일에 치어 오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함과 동시에 가야산(伽倻山)과 흡사함을 보고 고향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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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에 있는 남해당에 얽힌 이야기. 「현종의 목숨을 구해 준 남해포 수신」은 고려 현종(顯宗)[992~1031]이 남해포(南海浦) 수신(水神)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크게 이기자 보은하기 위해 남해당에 제각을 짓고 제사를 지내게 한 이야기이다.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고려 현종 원년인 1010년, 고려의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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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에서부터 멸망[918~1392년]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영암군 지역에는 고려 시대에 영암군[영암읍·군서면·덕진면 지역], 곤미현(昆湄縣)[미암면·학산면·삼호면 지역], 야로현(野老縣)[금정면과 나주 세지면 지역], 반남현(潘南縣)[시종면과 나주 반남면 지역]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중 영암군은 지금의 전라남도 서남부 지역의 거점으로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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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고려 초기 왕실의 안정을 위해 노력했던 영암 출신의 문신. 최지몽(崔知夢)[907~987]은 영암 출신으로, 그의 학문을 높이 산 고려 태조 왕건(王建)에게 발탁되어 측근에서 보좌하며 후삼국 통일에 기여하였다. 후삼국 통일 이후에는 태조의 유지를 받들어 혜종(惠宗)과 정종(定宗) 등 후계 왕위 계승자들의 권력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고, 이 과정에서 왕위를 노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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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에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국제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포구. 상대포(上臺浦)는 예로부터 호남 3대 명촌으로 손꼽힌 영암 구림 마을에 있었던 옛 포구로, 백제 때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일본 등을 오가는 배들이 드나드는 국제 포구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 상대포는 각종 문물과 문화가 활발히 교류하는 국제 포구로서 전성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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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에 있는 해주 오씨 집성 마을. 해주 오씨(海州吳氏)의 시조는 고려 성종 때 중국에서 건너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낸 오인유(吳仁裕)이다. 금계리 해주 오씨 집성촌은 오찬주가 지금의 초안(草岸) 마을에 정착한 이후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금계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윤금리(潤金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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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이 속했던 행정 구역. 나주목은 983년(성종 2) 전국에 설치된 12개의 목(牧) 중 하나이다. 1018년(현종 9)에 지방 제도를 완비하면서 12목을 8목으로 조정할 때에도 주목(主牧)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암군은 나주목의 영군(領郡)이었다. 영암은 지방 제도가 재정비되던 성종 때에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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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지금의 영암 지역인 낭주에 설치되어 1012년(현종 3)까지 유지되었던 지방 행정 단위. 낭주 안남 도호부(朗州安南都護府)는 고려 940년(태조 23)에 처음 등장한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가 995년(성종 14)에 지금의 영암군에 해당하는 낭주(朗州)에 옮겨 설치된 것이다. 1012년(현종 3)에 고부(古阜)로 옮겨갈 때까지 약 17년간 영암을 거점으로 서남 해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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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있었던 덕진 다리에 얽힌 이야기.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덕진면 경계에는 영암천이 흐르는데, 옛 이름은 덕진천이다. 덕진천에는 덕진교가 놓여 있었고, 덕진교의 서쪽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덕진포 포구였다. 덕진교는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과 영암읍의 역리 마을 사이에 있어 나주에서 영암읍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통과하여야 한다. 그런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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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에 있는 산성 터.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따르면, 옛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던 군서면(郡西面)에는 성묘산 정상부에 위치한 성묘산성(城妙山城)과 월출산 죽순봉의 가지 능선 상에 위치한 도갑산성(道岬山城) 등 2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도갑산성이 있는 군서면은 영암읍 및 덕진면(德津面) 지역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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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성묘산에 있는 산성 터.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따르면, 옛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던 군서면(郡西面)에는 성묘산(城妙山) 정상부에 위치한 성묘산성(城妙山城)과 월출산 구순봉의 가지 능선에 위치한 도갑산성(道岬山城) 등 2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성묘산성이 입지하고 있는 군서면은 영암읍 및 덕진면 지역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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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 서남해 지역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영암은 바다와 강, 산이 어우러진 풍요로운 자연 환경과 내륙과 도서·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고대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고대에는 옹관 고분 문화권의 중심지였고, 고려 시대에는 주변의 8개 군현을 아우르는 지역 거점이었다. 조선 시대 이후 주변 지역이 분리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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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 시대에 중앙과 지방간 명령 전달 및 운수를 뒷받침하기 위해 영암 일대에 설치되었던 교통 및 통신 제도. 역참 제도는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관물의 수송, 공문서의 전달, 관리들의 숙박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역(驛)은 삼국 시대부터 이미 설치되었다. 고려 성종 대에 와서 12목 군현제의 확립과 더불어 역참제가 구체화되었고, 현종 대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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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이후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와 영암읍 역리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고려 성종 대에 전국을 12목으로 나눈 군현제의 확립과 더불어 구체화된 역참제는 현종 대에 와서 전국 22도(道)에 525개소의 역(驛)으로 완성되었다. 이때 영암 영보역의 경우는 승라주도(昇羅州道)에 속한 30개 역 중의 하나로 나주의 청암도역 관할에 속하였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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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박항(朴恒)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맏아들인 밀성 대군(密城大君) 박언침이며, 밀양 박씨에서 분파된 영암 박씨(靈巖朴氏)는 박언침의 10세손으로 고려 시대에 좌정승을 지낸 박항[1227~1281]을 중시조로 하여 가계를 이어오고 있다. 박항의 5세손인 박기(朴璣)는 고려 충숙왕 때 은청광록대부(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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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정기 시장. 영암 오일장은 5일과 10일에 서는 오일장으로, 공식 명칭은 ‘영암 5일 시장’이다. 세칭 ‘읍내장’이라고도 한다.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 333-1번지 장터 마을에 있는데, 조선 시대에 영암읍성의 동문 밖에 형성되어, 독천장과 함께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조선 시대의 역로가 나주~영암읍성 동문~강진~해남을 연결하였으므로 영암 오일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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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남풍리·동무리·역리에 걸쳐 있는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읍성 터. 영암읍성이 있는 영암읍 일대는 삼국 시대부터 군현이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던 곳이다. 백제 때 월나군[月奈郡]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에 영암군(靈巖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성종 때는 일시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하였으며, 1018년(현종 9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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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보를 시조로 하고 육기평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옥천 육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입향조 육기평(陸基平)이 학산면 매월리에 입향한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옥천은 충청북도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군이다. 시조 육보(陸普)는 당나라 사신으로 신라에 파견되었다가 귀화하였고, 경순왕의 총애를 받아 부마가 되었다. 관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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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월출산 아래에 있는 절터. 월곡리(月谷里) 월암사(月岩寺)는 신라 말 승려 도선 국사(道詵國師)의 출가지로 전해지고 있지만, 출토 유물로 보면 고려 시대부터 조선 후기 사이에 존재하였던 사찰로 추정된다. 1986년에 절터 근처에서 ‘월산군(月山君)’이라는 명문(銘文)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고, 주변에 기단 석축(石築)과 깨어진 기와 조각이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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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와 한대리, 금정면 연소리의 경계인 활성산에 있는 산성 터. 활성산성(活城山城)이 입지하고 있는 영암읍 일대는 삼국 시대 때부터 군현(郡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던 곳이다. 백제 때 월내군(月奈郡)[월나군]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에 영암군(靈巖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성종(成宗)[960~997] 때는 일시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