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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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浦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광록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4월 1일 - 전라남도 영암군 종남면 도포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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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2년 - 전라남도 영암군 종남면 도포리에서 도포면 도포리로 개편 |
보호수 | 도포리 곰솔 -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128-3번지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438㎢ |
가구수 | 82세대[2014년 12월 31일 기준] |
인구[남,여] | 142명(남자 76명, 여자 66명)[2014년 12월 31일 기준]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도포리는 도싯개, 도삿개, 또는 도시포, 도포라고 하였다. 도포리의 동쪽에 있는 동도포 마을 뒷산인 저산(猪山)[37m]의 한글 이름이 돛뫼이다. 이 돛뫼 밑 개[浦]를 돛개라 하였으며, 한자로 옮기면서 도포(都浦)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도포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종남면(終南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나포리를 병합하여 도포리라 하였고, 1932년 종남면이 도포면으로 바뀌면서 도포면 도포리가 되었다.
도포리의 입향은, 1638년초 나주에 살던 김해 김씨 김한수, 여산 송씨 송근룡, 경주 최씨 최삼지 세 사람이 당시 무인도였던 도포에 상륙하여 정주해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리면서라고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도포리의 서쪽에 있는 서도포 마을은 하굿둑을 막기 전에 포구가 있을 때는 황해도 옹진, 경기도 인천, 강원도 속초, 경상도 포항, 삼천포, 전라도 흑산도, 가거도, 홍도, 진도 조도 등에서 고기배가 입항하는 큰 포구였다.
[자연 환경]
도포리는 넓은 평지에 위치하며, 서쪽에 인덕들, 동쪽에는 용산 평야가 있다. 남쪽으로 영암천이, 도포리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영암천의 지류가 흐른다.
[현황]
2012년 11월 기준으로 면적은 1.438㎢이며, 북쪽은 도포면 덕화리, 동쪽은 덕진면 용산리에 접해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82세대, 142명(남자 76명, 여자 6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두 개의 행정리가 있으며, 서도포 마을·동도포 마을·나주말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영산강 하굿둑을 축조하기 전에는 해변 마을로 포구(浦口)가 있어 시장이 크게 번창하였으나, 현재는 해수면이 논으로 바뀌어 논농사를 짓는 마을이 되었다.
도포리에는 도포제 줄다리기 전승관이 있다. 풍수지리설에 의해 마을의 터가 돼지 형국이라 해서 구시혈에 천재단을 설치하고, 매년 정월 보름과 칠월 백중 날에 마을의 태평과 풍년을 비는 제를 모시고 있다. 제를 모실 때에는 서편에는 서당 샘물, 동편에는 통샘물을 1주일 전에 청소하여 금줄을 쳐서 사람 출입을 못하게 하고 그 샘물로 제물을 만들어 엄격히 제사를 모신다. 이어서 지기(地氣)와 지운(地運)을 높이기 위하여, 동도포와 서도포로 편을 갈라 터 누르기 줄다리기를 한다. 이 민속놀이는 영암군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며, 이를 기념하고 줄다리기의 줄을 보존하기 위해 영암군의 지원으로 도포제 줄다리기 전승관을 건립하였다.
2010년에 영암군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250년의 도포리 곰솔[지정 번호 15-15-6-1호]이 있다. 마을 동쪽으로 마한로가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