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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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德之肖像-油紙草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정길 16-5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희태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5년 5월 16일 - 최덕지 초상 및 유지초본 보물 제594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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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최덕지 초상 및 유지초본 보물 재지정 |
현 소장처 | 최덕지 초상 및 유지초본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296 |
성격 | 초상화 |
서체/기법 | 좌안 칠분면의 전신 좌상 |
소유자 | 전주 최씨 최연창 |
관리자 | 전주 최씨 최연창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최덕지의 초상화 진본과 초본.
[개설]
최덕지 초상 및 유지초본(崔德之肖像-油紙草本)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초상화 진본과 초본으로 조선 시대 사대부 초상화로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최덕지는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한 뒤 남원 부사 등 전라도 여러 곳의 수령과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인물로 영보촌으로 은퇴하여 존양루를 짓고 존심 양성에 힘썼다. 문종은 관직에서 물러나는 최덕지에게 초상화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연촌 유사』에 따르면, 최덕지 영정은 원래 3본으로, 1본은 살아 있을 때의 진상(眞像)으로서 존양루 옛 터에 봉안했고, 나머지 2본은 녹동 서원과 주암사(舟岩祠)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최덕지 초상화는 뒤에 손질한 기록이 보이는데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영정을 황급히 나주 세화리 묘역에 묻었다가 왜구가 물러나고 수년이 지나 파보니 다행히 썩지는 않았다 한다. 최덕지 초상 및 유지초본은 1975년 5월 16일 보물 제59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최덕지 초상화 진본은 비단에 그린 채색화로서, 크기는 가로 53㎝, 세로 74㎝이다. 책이 놓여 있는 책상을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얼굴은 약간 오른쪽을 향하고 몸체는 정면으로 돌려져 있다. 모자는 모정(帽頂)이 둥근 감투 형인데, 검은색 반투명한 모자 속에 상투 부분이 비치고 있다.
의복은 하나의 색으로 표현되었고, 얼굴은 전체적으로 갈색 빛을 띠고 있으며 눈썹은 먹으로 엷게 칠한 위에 털을 한올 한올 밑으로 숙여지게 표현하였다. 발은 보이지 않고 손은 밖으로 나와 있으며, 얼굴과 옷 주름 등의 처리에서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를 잘 보여 준다. 감투 형에서 평량자(平凉子) 형으로 발전되어가는 과도기적 형태의 모자와 질손(質孫)이라는 포제(袍制) 등에서 여말 선초 사대부의 한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종이에 그린 유지 초본은 정본과 같은 크기이다.
[특징]
최덕지 초상화 화법에서는 갈색계의 안색(顔色)과 훈염법(暈染法)[움푹한 곳은 붓질을 거듭하고 도드라진 부분은 붓질을 덜 하는 그림 기법]의 사용으로 후대에 가채가 있었음이 엿보이지만, 서안(書案)의 형태, 생기에 찬 눈매, 수염 처리 등에서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생(寫生)의 기조가 된 초상화의 핍진력을 실감하게 하는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최덕지 초상화는 비단에 그린 조선 초기 문신의 초상화로서 조선 시대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대부 초상화이다. 조선 시대의 표현 방식과 기법, 복식 등을 알 수 있으며 당시 선비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종이에 그린 유지 초본은 다른 유지 초본이 얼굴 이하 가슴 부위까지의 크기인 데 비해 정본과 같은 크기여서 화가의 초안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