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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506
한자 文化遺産
영어의미역 Cultural Herit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희태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과 관련된 문화적 활동의 결과물로 계승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지정·관리하는 유·무형의 문화유산.

[개설]

문화재(文化財)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 중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지정의 유무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 문화재는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 따른 시·도 지정 문화재, 시·도 문화재 자료, 국가에서 등록하는 등록 문화재, 법령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인 보호와 보존이 필요한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로 나눌 수 있다.

또한 문화재의 유형에 따라 유형·무형 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등으로 나뉜다. 현재 영암군는 국가 지정 문화재 16건[국보 2건, 보물 9건, 사적 1건, 천연 기념물 1건, 중요 민속 문화재 3건], 전라남도 지방 문화재 54건[유형 문화재 9건, 무형 문화재 1건, 기념물 21건, 민속 문화재[민속자료] 8건, 문화재 자료 15건], 등록 문화재 1건 등이 있다. 이들 지정 문화재를 선사·고대 유산, 불교 유산, 유교 유산, 역사 유산, 민속 유산, 무형 유산, 자연 유산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사·고대 유산]

선사·고대 유산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와 삼한[원삼국, 마한], 삼국[백제]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다. 영암의 선사 고대 유산은 12건으로 모두 지방 지정 문화재[기념물 8건, 문화재 자료 4건]이다. 선사 유산은 청동기 시대의 묘제 유적과 생활 유적이 있다. 묘제 유적은 고인돌[지석묘] 유적으로 영암 엄길리 지석묘군[기념물 제82호]과 학계리 지석묘군[기념물 제229호]이다. 고인돌은 선돌[입석]과 함께 거석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동북아시아 중에서 한반도가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전라남도 지역이 고인돌 최다 밀집 지역이다. 영암도 많이 분포된 지역으로 102개군 830기가 발견되었는데 영암 엄길리 지석묘군이 대표적이다. 특히 1984년 발굴 조사 때 세형동검 조각이 출토된 것은 우리나라 고인돌 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생활 유적은 집자리[주거지]로서 영암 장천리 선사 주거지[기념물 제98호]가 있다. 1984년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지름 4.3~5.2m의 움집터로서 형태는 원형 내지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권의 유적이다.

고대의 묘제 유적은 다양한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삼한[마한] 때부터 삼국[백제] 시기까지의 고대 국가 형성기와 성립기에 만들어진 대형 고분이다. 외형상으로는 원형·타원형·방대형과 함께 전방 후원형[장고분]들이다. 고분군은 대형 옹관 고분[대형 독무덤]이 많이 분포하며 널무덤[토광묘]도 조사 되었다. 영암 옥야리 고분군[문화재 자료 제140호]은 28기, 금계리 계천 고분군[기념물 제144호]은 17기, 영암 신연리 고분군[문화재자료 제139호]은 15기가 밀집되어 있다. 이 외에도 영암 내동리 쌍무덤[기념물 제83호], 영암 금강리 금산 고분군[기념물 제191호], 영암 태간리 자라봉 고분[기념물 제190호], 영암 금지리 본촌 고분군[문화재 자료 제226호], 영암 남산리 마봉 고분군[문화재 자료 제227호] 등이 있다.

[역사 유산]

역사 유산은 역사 유적과 금석문, 초상화, 가마터[요지], 국제(國祭) 신당 등을 들 수 있다. 영암의 역사 유산은 국가 지정 문화재 4건[보물 3건, 사적 1건], 지방 지정 문화재는 5건[기념물 2건, 문화재 자료 3건]이다.

역사 유적으로 삼국[백제] 시기에 영암에서 출생하여 일본에 학문을 전수한 것으로 전하는 왕인 박사 유적지[기념물 제20호]가 있다. 영암 정원명 석비[문화재 자료 제181호]는 786년(통일 신라 원성왕 2)에 건립되어 전라남도에서 가장 오래된 금석문으로 불교와 관계되는 내용으로 보고 있어 당대의 문화사, 사회사, 신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보물 제1309호]과 영암 채지리 매향비[문화재 자료 제189호]는 불교문화와 매향 신앙 연구에 귀중하다.

영암 구림리 요지[사적 제338호]는 2기의 가마터가 발굴되었는데, 대체로 10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하는 시기에 제작 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 신라 시기에서 고려 시대로 옮겨가는 전환기의 가마터로 반지하식으로 굽는 방을 1개만 가진 가마의 구조나 발전된 도자기 조각의 특징으로 보아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남해당지[기념물 제97호]는 국가의 평안과 남해안 지역의 태평을 기원하기 위하여 국가 주관으로 남해 신령께 제사 지내던 제사 터 유구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부터 동해의 양양, 서해의 풍천, 남해의 나주 등 세 곳에 해신당(海神堂)을 두고 국가에서 제사를 거행하였는데 남해당지는 해신당 가운데 유일하게 터가 남아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나주에 속했다가 1906년 행정 개편으로 영암 지역으로 편입되었다.

「최덕지 초상 및 유지 초본」[보물 제594호]은 조선 초기 문관인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초상화와 초본으로 조선 시대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대부 초상화이다. 조선 시대의 표현 방식 및 기법, 복색 등을 알 수 있으며 당시 선비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김완 초상」[보물 제1305호]은 조선 중기 무관인 김완(金完)[1577~1635]의 초상화이고, 「시서 영정」[문화재 자료 제145호]은 조선 중기 문관인 시서(市西) 김선(金璇)[1568년~1642]의 초상화로서 두 작품 모두 조선 시대 초상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불교 유산]

불교 유산은 국가 지정 문화재 8건[국보 2건, 보물 6건], 지방 지정 문화재 10건[유형 문화재 7건, 기념물 1건, 문화재 자료 2건]으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국립공원 월출산을 중심으로 분포하는데 영암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국보 제144호]은 월출산 구정봉의 서북쪽 암벽을 불감(佛龕) 형태로 파고 그 안에 높이 8.6m의 거대한 불상을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바로 이웃하여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 석탑[보물 제1283호]이 있다.

도갑사[문화재 자료 제79호]는 월출산에 있는 절로, 신라 말에 영암 출신의 선각 국사(先覺國師) 도선(道詵)[827~898]이 지었다고 전하며 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수미·신미 두 스님이 해탈문을 중수하는 등, 그 뒤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의 산문(山門) 건축이다. 도갑사에는 영암 도갑사 석조 여래 좌상[보물 제89호], 영암 도갑사 오층 석탑[보물 제1433호], 영암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 동자상[보물 제1134호], 「도갑사 도선 국사 진영」[유형 문화재 제176호], 「도갑사 수미 왕사 진영」[유형 문화재 제177호], 도갑사 석조[유형 문화재 제150호], 영암 도갑사 도선 국사·수미 선사비[보물 제1395호], 도갑사 수미 왕사비[유형 문화재 제152호] 등의 지정 문화재가 있다.

불상으로는 영암 월곡리 마애 여래 좌상[유형 문화재 제149호], 영암 축성암 목조 나반존자상[문화재 자료 제210호], 영암 학계리 석불 입상[유형 문화재 제66호], 영암 망월사 석불 좌상[유형 문화재 제259호]이 있다. 석탑은 1009년(고려 목종 12)에 조성한 탑지(塔誌)가 확인된 영암 성풍사지 오층 석탑[보물 제1118호], 서남부권 유일한 고려 시대 목탑 유구인 영암 사자사 목탑지[기념물 제197호] 들도 중요한 불교 문화유산이다.

[유교 유산]

유교 유산은 향교, 서원, 사우, 부조묘, 정자, 재사, 신도비, 충효열 정문, 정려각, 목판, 고문서 등 다양한 형태로 있다. 국가 지정 문화재는 없으며 지방 지정 문화재가 16건[유형 문화재 2건, 기념물 7건, 민속 문화재 1건, 문화재 자료 6건]이다.

1. 향교·서원·사우

향교는 공자와 동국 18현 등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영암 향교[문화재 자료 제126호]는 조선 세종 2년(1420)에 처음 지어졌는데, 정유재란 등 피해를 당하여 수차례 다시 중수되었다. 교육 공간과 제사 공간을 동-서로 나란히 배치한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녹동 서원은 조선 시대의 문인 학자인 연촌 최덕지, 산당(山堂) 최충성(崔忠成)[1458~1491],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1629~1689], 농암(農巖) 김창협(金昌恊)[1651~1708]를 차례로 배향한 영암 유일의 사액 서원이다. 소장 유물인 영암 녹동 서원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유형 문화재 제183호]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의 운영과 기능, 출판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유물이다.

구고사 및 김완 장군 부조묘[기념물 제49호]는 조선 시대 무관인 김완 장군의 초상화[보물 제1305호]와 신위를 모시는 사우와 부조묘이다. 김완 장군 묘소 및 신도비[기념물 제40호]도 지정 문화재이다. 영암 장동사[기념물 제109호]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공을 세운 전몽성[1561~1597]과 전몽진, 전몽태를 차례로 모신 사우이다.

2. 정자·재실

열무정은 일명 ‘사정(射亭)’이라고도 불리는 정자로 1710년(숙종 36)에 사포계가 창설되면서 모임을 가졌던 곳이어서 소장 문서와 함께 열무정 및 사포계 문서 일괄[문화재 자료 제160호]이 지정되었다. 집성 촌락 공동체의 활동 공간으로 문화 교류의 장소인 정자는 영보정[기념물 제104호], 영팔정[기념물 제105호], 장암정[기념물 제103호], 영암 부춘정[유형 문화재 제284호]이 있다. 영암 이우당[문화재자료 제247호]과 고반재[지정 명칭: 고반재 및 소장 고문서 일괄, 문화재 자료 제236호], 집영재[민속 문화재 제16호]도 향촌 서재로서 기능하였다.

3. 고문서·목판

고문서로는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문화재 자료 제198호]가 조선 시대 중기와 후기 향촌 동약(洞約) 문서로서 중요하다. 구림 대동계는 호남의 대표적 동약으로 조선 시대 동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영암 녹동 서원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는 소장 유물, 열무정고반재는 소장 문서가 건조물과 함께 지정되어 있다.

영암 녹동 서원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유형 문화재 제183호]는 원생들의 명단을 적은 『서원청금안』 25책, 『서원서재유안』 2책, 『심원록』 5책, 『합경재보노안』 3책 등을 비롯하여 통문(通文), 완의(完議), 노비 기증 문서 들이 있다. 목판으로는 『연촌 유사』, 『문곡집』, 『산당집』 등 녹동 서원에 모셔진 인물들과 인근 지역 인물의 문집이 있다. 녹동 서원의 연혁, 조직과 운영, 경제 기반, 유생들의 명단 등 종합적이고 다각적인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열무정 및 사포계 문서 일괄 [문화재 자료 제160호]는 『사포계안절목』, 『사포계 완의』, 『사포계 좌목』, 『사포계 중수안』 등 24책이다.

영암 고반재 및 소장 고문서 일괄 [문화재 자료 제236호]은 강학 공간인 고반재와 함께 공신녹권 2건, 명문 1매, 교지 23매, 교첩 5건, 첩 2건, 호적 단자 7건, 시권 1건 등 모두 7종 41건이 소장되어 있는데 향촌사 자료로 가치가 있다.

4. 정려

영암 삼충각[기념물 제108호]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순절한 박형준[1548~1592]과 아들 박효남[1568~1592], 박호남[?~1592] 3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보호 비각이다. 전씨 충효문[기념물 제71호]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전몽성 형제의 충절과 효성을 기리고자 세운 정려문이다. 조선 시대의 근간이었던 충효 정신이 깃든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

[민속 유산]

민속 생활사 유산은 의·식·주에 관계되는 의복, 가옥, 도구, 기술과 민간 신앙에 관련된 유적과 유물이다. 영암의 민속 유산은 12건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 3건[중요 민속 문화재 3건], 지방 지정 문화재 8건[민속 문화재 7건, 문화재 자료 1건], 등록 문화재 1건이다.

조선 시대 복식으로 김함의 묘 출토 의복[중요 민속 문화재 제209호]은 1985년 무관인 김함(金涵)[1568~1598]의 묘에서 출토되었다. 한산도 해전에서 순절하여 시신을 찾지 못하자 나무로 시신의 형상을 만들어 염습하여 장례를 치룬 특수한 형태로 발견되었다. 장옷, 저고리, 바지, 모자, 누비 무명 버선, 부들 신, 이불, 제웅 등 17건으로 16세기 말엽의 복식 연구에 귀중하다. 최원립 장군묘 출토 복식 유물[중요 민속 문화재 제253호]은 수군절도사를 지낸 무관 최원립(崔元立)[1618~1690]의 묘에서 2011년 출토되었다. 복식류를 비롯하여 이불, 지석 등 총 56점으로, 출토지[전라남도 영암군]와 연대, 묘주의 인적 사항이 분명하고, 복식 형식에 있어 변화가 뚜렷한 17세기 후반의 복식 변화 모습과 당시 수군절도사를 지낸 무관의 복식 및 염습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영암 최성호 가옥[중요 민속 문화재 제164호]은 조선 후기 전형적인 남도 부농의 집으로 19세기 말에 지은 것이며, 영암 월곡리 전씨 고택[민속 문화재 제3호]은 조선 후기 중상층 주택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영암 현종식 가옥[민속 문화재 제14호]은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조종수 가옥[민속 문화재 제35호]은 조선 후기 전형적인 대농의 집이며, 영암 문창집 가옥[문화재 자료 제149호]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영암 죽정 마을 옛 담장[등록 문화재 제368호]은 가옥의 벽체, 하천 제방과 옛 돌담이 잘 조화되어 우리의 전통 마을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영암 죽정리 국장승[민속 문화재 제18호]과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민속 문화재 제19호], 영암 메밀 방죽 옆 장승[민속 문화재 제20호]은 고려 시대 장승 유적으로 민간과 사찰 신앙과 연관되어 민간 신앙사에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쌍계사지 장승[민속 문화재 제17호]은 조선 시대 사찰 장승으로서 원래는 나주 지역에 속하였었다.

[무형 유산]

무형 유산은 연극, 음악, 놀이 의식, 공예, 기술 등을 들 수 있다. 영암의 무형 유산은 전통 공예 기술로 참빗장[무형 문화재 제15호]이 지정되었으나 보유자는 별세하였다. 영암 참빗은 만주까지 수출하는 등 뛰어난 민속 생활 공예품으로 평가받았다.

「영암 갈곡리 들소리」[무형 문화재 제53호]는 영산강 하류 논농사 노래를 대표하는 들소리로서 논종사와 관련한 문화적 맥락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농업 문화유산이다. 혼합 박자로 된 만드리 소리나 빌소고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가치가 있다. 2004년 제45회 한국 민속 예술 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자연 유산]

자연 유산으로 동물, 식물, 지질, 광물, 경승지 등을 들 수 있다. 영암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 1건[천연 기념물 1건], 지방 지정 문화재 2건[기념물 2건]이 있다.

월출산[기념물 제3호]은 영암군과 강진군에 걸쳐 있는데 천황봉을 최고봉으로 하여 구정봉, 사자봉, 도갑봉 등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경관이 뛰어나다. 신라 때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 때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불렸다고 한다. 통일 신라 시기 이후 국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도갑사와 강진 쪽에 무위사가 있고 구정봉으로 오르는 길에 영암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국보 제144호]이 있다. 북쪽에 용추 폭포, 동쪽에 구절 폭포, 남쪽에 금릉 경포대가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고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영암 월곡리 느티나무 [천연 기념물 제283호]는 마을제를 지내는 등 마을 사람들의 단합과 문화생활의 중심적 역할을 해 왔을 뿐만 아니라, 수령이 500년이 넘는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도 크다.

영암 양장리 곰솔 [기념물 제182호]은 수령이 300년가량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던 의미 있는 나무이고, 주위 수목들과 함께 서북풍을 막아 주는 방풍림의 역할을 한다.

[의의와 평가]

영암군의 문화재는 청동기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와 수량이 확인된다. 역사적으로도 영암군의 특징적인 문화상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정 문화재를 중심으로 살펴볼 경우 청동기 시대의 영암 장천리 선사 주거지는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유산이다. 정식 발굴 조사를 거치고, 그 현장에 바로 보호 전시관을 지어 보존하면서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종면 일대를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권에 집중 분포하는 대형 옹관 고분군은 마한 시기부터 백제 때까지 고대 국가 문화상을 살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삼국 시대 이후 문화재 가운데 통일 신라의 금석문인 영암 정원명 석비는 고대 금석문 자료로서 중요하다. 월출산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 문화유산도 통일 신라 때부터 고려 시대까지 영암 지역의 중요한 역사적 특징이다. 월출산영암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은 대형 마애불상으로 영암 용암사지 삼층 석탑과 함께 조성 당시의 영암 지역의 사회적 위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문화재이다.

도갑사는 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며 「도갑사 도선 국사 진영」영암 도갑사 도선 국사·수미 선사비가 전한다. 영암 도갑사 해탈문은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의 목조 건축사에 중요한 건조물이며, 영암 사자사 목탑지는 남도권의 유일한 고려 시대 목탑 유구로서 가치가 있다. 조선 시대 사액 서원인 녹동 서원 등 향교와 서원·사우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고려 시대의 국장승, 황장승 등 장승 유적도 민속 문화에 있어 중요한 유산이다.

이와 같이 영암의 지정 문화재는 선사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흐름 속에서 영암 지역이 가지는 위상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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