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894 |
---|---|
한자 | 永保里全州崔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
집필자 | 정윤섭 |
문화재 | 「최덕지 초상 및 유지 초본」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296 |
---|---|
문화재 | 영보정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296 |
문화재 | 녹동 서원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 356 |
성격 | 동성 마을 |
면적 | 1.955㎢ |
가구수 | 45가구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전주 최씨 집성촌.
[개설]
영보리의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가 입향한 15세기 초반 이후 영암 지방 사족 활동을 주도하였다.
[변천]
전주 최씨 집성촌인 영보리는 조선 초기의 학자 최덕지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영보리에는 최덕지의 셋째 아들 진사공 최숙(崔淑)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고, 이들은 전주 최씨 진사공파다.
최덕지는 『동국여지지(東國與地志)』 인물조에서 전주 최씨의 영암 입향조로 확인된다. 최덕지는 호조 참의(戶曹參議)와 집현전 제학(集賢殿提學)을 역임한 아버지 최담(崔霮)과 어머니 전주 박씨(全州朴氏)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전주와 완산 등지에서 세거하였다.
영보리에 이주 정착한 전주 최씨는 이후 혼인으로 인한 인척 관계를 통해 서서히 친족 공동체를 형성해 나간다. 이때 전주 최씨 가문과 연결을 맺으면서 새롭게 영암에 터전을 마련하게 되는 가문이 거창 신씨(居昌愼氏)와 남평 문씨(南平文氏)이다.
[명칭 유래]
영보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북일시면(北一始面)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에 전라도 나주의 청암역(靑巖驛)을 중심으로 한 역도(驛道)인 청암도(靑巖道) 찰방에 딸린 영보역(永保驛)이 있었으므로 영보역, 역촌(驛村), 역몰, 영보촌, 영보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냉천(冷泉), 관곡(寬谷), 서당(書堂), 은행정(銀杏亭)을 병합하여 북일시면 영보리로 개설하였고, 1929년 북일시면이 덕진면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덕진면 영보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인근에 덕진면 운암리와 금정면 연보리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뒤의 낮은 산을 배경으로 하여 앞에는 들판이 펼쳐져 있고, 노송제 저수지가 있다. 벼농사 등 농업을 위주로 하는 마을이다.
[현황]
2012년 현재 영보리에는 전주 최씨 45가구가 살고 있다. 전주 최씨 관련 유적으로 영보리에 최덕지가 세운 정자인 전라남도 기념물 제104호 영보정(永保亭)과 영보정에 보관되어 있는 보물 제594호 「최덕지 초상 및 유지 초본((崔德之肖像 및 油紙草本)」이 있다. 또한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는 최덕지를 배향한 녹동 서원(鹿洞書院)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