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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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場岩里南平文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
집필자 | 정윤섭 |
개설 시기/일시 | 1613년 - 장암리 남평 문씨 집성촌 문익현이 장암리에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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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 장암정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497번지 |
성격 | 동족 마을 |
면적 | 3,526,720.3㎡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남평 문씨 집성촌.
[개설]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입향조인 문맹화(文孟和)[?~1487]가 세조의 왕위 찬탈을 계기로 관직을 버리고 아내인 연촌 최덕지의 외손녀 서흥 김씨의 고향인 영암에 은거하면서 장암리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게 된 성씨다.
남평 문씨는 문익주(文益周)를 위시하여 문익행(文益行), 문익현(文益顯), 문후소(文後素) 등 학행을 겸비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하여 향안(鄕案)에 입록된 인물이 21명이나 되었다.
[명칭 유래]
조선 후기에 영암군 군종면(郡終面) 지역이었던 곳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류정리(柳亭里), 무덕정(茂德亭), 회화정(會和亭), 반석정(盤石亭), 영춘정(永春亭), 신석정(新石亭)을 병합하여 영암면 장암리를 개설하였다. 1979년 4월 7일 영암면이 영암읍으로 승격되면서 영암읍 장암리가 되었다.
장암이라는 이름은 마을의 삼태성(參台星)의 상징으로 알려진 구암동산(龜岩東山), 토등동산(兎嶝東山), 조산동산(造山東山)을 중심으로 해서 마당에 바위가 깔려 있다고 해서 마당 장(場) 자와 바위 암(岩) 자를 써 지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남평 문씨 입향조인 문맹화의 증손자인 문익현[1573~1646]이 1613년(광해군 5)에는 영보리에서 장암리로 세거지를 옮겼고, 남평 문씨는 장암리를 중심으로 동족적인 기반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문익주는 영암 지방의 남평 문씨들이 가장 추앙하는 인물로 신희남(愼喜男)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임진왜란 중에는 김천일, 고경명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또한 당시 사론을 이끌던 조헌, 유희춘, 이후백의 천거를 받아 벼슬을 하였고, 임진왜란 직후 영암 지방의 향안 중수를 주동했다.
문후소는 향인 황정노와 함께 영암 향교의 이건을 주도한 것을 통해 남평 문씨들은 임진왜란 직후 이 지역의 향론을 주도할 만큼 큰 기반을 마련하였다.
[자연환경]
인근에 영암읍 대신리, 덕진면 노송리와 인접하며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남쪽으로 남도(南道)의 명산인 월출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넓은 농토가 있는 들판에 자리 잡고 있어 농업을 위주로 하고 있다.
[현황]
2012년 현재 장암 마을에는 남평 문씨 약 7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장암정의 남평 문씨들은 영암 지방의 다른 여러 성씨들처럼 동족적인 유대와 결속력을 다지는 방편으로 동계 조직을 강화시켰고, 사우(祠宇)를 중심으로 지역 사회에서의 지위도 향상시켰다. 장암정(場岩亭)은 1760년(영조 36) 장암 대동계에서 창건한 호남 지방의 대표적인 향약 집회소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103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