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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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岩里-花山面-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장수로[덕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화산면 덕암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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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산면 덕암동에서 영천군 화산면 덕암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산면 덕암리에서 영천시 화산면 덕암리로 개편 |
행정구역 | 덕암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덕암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56㎢ |
가구수 | 109가구 |
인구[남, 여] | 240명[남 119명, 여 121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덕암리(德岩里)는 동네 어귀에 있는 큰 바위에 사람들이 지성을 다하여 빌면 덕을 본다 하여 덕암(德岩)이라 불렀는데, 바위 이름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덕암리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사람이 정착하였지만, 임진왜란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 가마골·부곡(釜谷) 마을에는 임진왜란 직후 영양 김씨(英陽金氏)가 산세 좋고 피난하기 알맞은 지역이라고 생각하여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덕산(德山)·호미(虎尾)에는 임진왜란 후 파평 윤씨와 영양 김씨가 입향하여 현재까지 살고 있다. 덤밑·암저(岩底) 마을은 임진왜란 때 산중에서 피난하던 난민들이 이곳으로 모여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중 성주 이씨가 주를 이룬다.
덕암리는 화산면에 속하며, 화산면은 조선 시대 신녕군의 아촌면(牙村面)과 대량면(代良面), 영천군의 지림면(淽林面)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 세 개 면과 북습면(北習面) 및 명산면(鳴山面) 일부를 합하여 신녕의 옛 이름을 따서 화산면(花山面)으로 발족되었다.
덕암리는 1914년 3월 1일 영천군 화산면에,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해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덕암리는 화산(華山)의 남쪽 산맥 끝 부분에 해당하는 구릉성 산지와 용호천 사이에 형성된 마을이다. 당지리에서 발원하는 용호천이 덕암리를 거쳐 신녕천으로 유입된다. 용호천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려오고 구릉성 산지가 동서 방향으로 나 있기 때문에 마을도 산기슭을 따라 남북 방향으로 발달하여 있다.
[현황]
덕암리의 동쪽으로는 연계리, 남쪽으로는 청통면, 서쪽으로는 대안리, 그리고 북쪽으로는 효정리와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덕암(德岩)·가마골[釜谷]·호미리(虎尾里)·암저(岩底)·장승배기 등이 있다. 덕암리의 면적은 1.56㎢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109가구, 240명으로, 남자가 119명, 여자가 121명이다. 교육 시설로는 화덕 초등학교가 있다. 덕암리의 북쪽에는 신녕~영천 간 국도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남쪽에는 중앙선 철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