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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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晩翠堂古宅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732년 - 영천 만취당 고택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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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월 14일 - 영천 만취당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제175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천 만취당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천 만취당 고택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5[오계리 271] |
성격 | 고택 |
양식 | 사랑채: 소로수장 |
정면 칸수 | 사랑채: 5칸|안채: 6칸 |
측면 칸수 | 사랑채: 1.5칸|안채: 1.5칸 |
소유자 | 조익현 |
관리자 | 조규성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가민속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정조 때 무인 조학신(曺學臣)이 건립한 살림집.
[개설]
조학신[1732~1800]의 본관은 창녕, 자는 심부(心夫)이며, 지산 조호익 선생의 7세손으로 조선 후기 정조 때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 무인이다. 영조가 친히 면접하고 그의 기개에 감탄해 청룡도를 내리고 사복내승으로 제수했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전라도 수군병마절도사를 지냈다. 묘소는 영천시 대창면 오길리에 있다.
[위치]
영천 만취당 고택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5[오계리 271]에 있다. 금호읍내에서 대창면으로 이어지는 금창교[금호강에 놓인 도로교량]를 건너 3.5㎞ 정도 가면 좌측 동쪽으로 오계리 종동마을이 보인다. 이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몇 채의 고택이 보이는데 금산당과 접한 집이 만취당이다.
[변천]
만취당은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의 살림집 사랑채의 당호로 1762년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후대에 새사랑채[광명헌]와 사당 그리고 보본재를 추가로 건립해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1984년 1월 1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7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만취당은 소나무가 많은 야트막한 산지로 둘러싸인 평지마을에 안채와 사랑채 등이 튼‘口’자형태로 정 남향해 배치되어 있다. 종동길 변에 있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먼저 ‘一’자형의 사랑채인 만취당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난 중문을 들어서면 ‘ㄷ’자형 안채가 있다. 안채 우측 뒤로는 사당영역이 별도의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고 그 뒤로 후대에 건립된 보본재가 있다. 사랑채 앞으로는 직교해 고방채가 있고 그 앞으로 문간채 좌측에는 후대에 건립된 새사랑채가 남동향으로 앉아 있다.
주 건물인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 팔작집으로 낮은 두벌대 자연석 기단 위에 원형의 가공초석을 놓고 퇴칸에만 원주를 세워 간결한 소로수장의 오량가로 완성했다. ‘ㄷ’자형의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4.5칸 팔작집으로 낮은 외벌대 자연석기단에 덤벙주초를 앉혀 역시 오량가의 가구로 완성했다. 전면의 퇴칸에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방주를 세웠다.
고방채는 초가집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이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익공 맞배집이다. 문간채 좌측의 새사랑채는 안채와 사랑채 등의 타 건물과 향을 다르게 해 앉아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집이다.
[현황]
만취당은 평평한 대지에 안채·사랑채·새사랑채·사당·문간채·재실 등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평지에 건립된 관계로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주 건물인 만취당 대청 상부에는 ‘만취당’이라고 쓰인 현판을 비롯해 영모재·기문 등이 걸려 있다.
새사랑채에는 길에서 별도의 일각문이 나 있고 사랑마당에서도 일각문을 통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문간채 좌측 담장 앞에는 문화재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 마을에는 만취당을 비롯해 좌측으로 접한 금산당이 있고 창녕 조씨 후손들의 전통가옥이 즐비하게 있다.
[의의와 평가]
만취당은 조선 후기의 살림집으로 사대부 주택의 구성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건축양식과 주생활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후대에 보본재·새사랑채·사당 등이 건립되면서 전체적인 배치구성의 변화양상도 엿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