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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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집필자 | 전민욱 |
입향지 | 경주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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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경주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 |
세거|집성지 | 경주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 |
세거|집성지 | 경주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자포리 |
세거|집성지 | 경주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반정리 |
세거|집성지 | 경주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석촌리 |
세거|집성지 | 경주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 |
세거|집성지 | 경주김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 한천마을 |
성씨 시조 | 김알지 |
입향 시조 | 김자양|김함 |
[정의]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조(世祖)로 하며, 김자양(金自養)과 김함(金緘)을 입향조로 하는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경주 지역 시림(始林)[계림(鷄林)]의 금 궤짝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신라 탈해왕이 성을 김(金)이라 지어 준 김알지(金閼智)가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시조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에게는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망국의 한을 안고 입산한 마의태자고, 둘째는 울산 김씨[그 손자가 나주 김씨], 셋째는 경주 김씨 영분공파(永芬公派), 넷째는 경주 김씨 은열공파(殷說公派), 다섯째는 의성 김씨, 여섯째는 강릉 김씨, 일곱째는 언양 김씨, 여덟째는 삼척 김씨의 1세조가 되었다.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世)로 하고 14세 문선공(文宣公) 김요(金瑤)의 현손 6형제를 각각 파조(派祖)로 하는데, 영천 지역에 세거하고 있는 경주 김씨는 셋째 김을진(金乙軫)의 장령공파(掌令公派)와 다섯째 김을초(金乙軺)의 규정공파(糾正公派)가 주류를 이룬다.
경주 김씨 영천 입향조(入鄕祖)는 당시 영천군(永川郡)에 입향한 김을초의 아들 호연당(浩然堂) 김자양(金自養)과 신녕현(新寧縣)에 입향한 김을진의 손자 농은(農隱) 김함(金緘)을 들 수 있다.
[입향 경위]
경주 김씨인 김자양과 김함이 영천으로 입향한 뚜렷한 이유는 찾을 수 없으나 다만 중앙 정치에 염증을 느껴 벼슬을 버리고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고자 이곳 영천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김자양은 처음에는 영천의 전촌(錢村)[현 영천시 도동]으로 이주하였다가 더욱 외진 곳인 노루목[현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으로 이주를 하여 정착하게 되고, 김함은 신녕현 생천(生川)[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에 이주하여 그곳을 터전으로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현황]
경주 김씨 입향 이후 인물을 향지(鄕誌)인 『영양지(永陽誌)』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면, 입향조인 김자양을 비롯하여, 문과(文科)로 현감(縣監)인 김백돈(金伯敦), 참봉(參奉) 김준(金濬), 문과(文科)로 현령(縣令)인 김효민(金孝敏), 문과(文科)로 군수(郡守)인 김계돈(金季敦), 참봉(參奉) 김함(金瑊), 증(贈) 호조참의(戶曹參議) 김응생(金應生),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김기(金琦), 주부(主簿) 김경(金璟), 학행으로 참봉(參奉)을 제수받은 김희로(金希路), 증(贈) 형조정랑(刑曹正郞) 김대해(金大海), 군자감정(軍資監正) 김몽(金濛), 증(贈)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김연(金演), 참봉(參奉) 김척(金滌), 군자감참봉(軍資監參奉) 김한(金澣), 함안군수(咸安郡守) 김완(金浣), 주부(主簿) 김명해(金明海), 병조참판(兵曹參判) 김광복(金光福),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김광록(金光祿),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김헌(金獻), 증(贈) 형조참의(刑曹參議) 김광동(金光東), 도사(都事) 김희헌(金希憲), 무과(武科)로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인 김윤려(金潤礪), 무과(武科)로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인 김광려(金光礪), 찰방(察訪) 김징(金徵),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김응국(金應國),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김취형(金就硎), 증(贈) 이조참판(吏曹參判) 김성화(金性和), 사마(司馬) 김계천(金繼天), 어모장군(禦侮將軍) 김덕수(金德修), 감역(監役) 김경찬(金慶贊),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김계남(金繼男), 수직(壽職)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인 김성한(金成漢),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김만(金滿), 증(贈) 병조정랑(兵曹正郞) 김수(金洙), 증(贈) 통정대부(通政大夫) 김태중(金泰重), 참봉(參奉) 김대엽(金大曄), 참봉(參奉) 김상성(金尙聖),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종국(金宗國),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김병연(金秉鍊), 선원각낭청(璿源閣郎廳) 김명도(金命道),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성채(金聖采), 참봉(參奉) 김학하(金學河),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종현(金鍾賢), 수직(壽職) 통훈대부(通訓大夫) 김영건(金永建), 수직(壽職)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재용(金在鏞),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석진(金錫振), 증(贈) 동몽교관(童蒙敎官) 김경순(金景淳), 증(贈) 부호군(副護軍) 김낙구(金洛龜), 참봉(參奉) 김구만(金九萬),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김현곤(金鉉坤), 수직(壽職)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병상(金秉祥),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옥남(金玉楠),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김만경(金萬鏡), 감찰(監察) 김면규(金冕奎),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성우(金聖佑),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김상손(金相遜), 수직(壽職) 부호군(副護軍) 김성함(金聖緘),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원주(金願鑄), 효행으로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에 제수된 김상호(金相壕), 효행으로 주부(主簿)에 제수된 김영곤(金永坤)과 김재호(金載湖), 감역(監役) 김기석(金基錫), 주사(主事) 김두석(金斗錫), 절충장군(折衝將軍) 김술태(金述泰),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김희태(金熙泰),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주탁(金周鐸), 교관(敎官) 김상문(金相文),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김성호(金成浩), 절충장군(折衝將軍) 김제악(金濟岳)과 학문으로 추중된 김상준(金尙俊), 김두민(金斗玟), 김민호(金玟滈)가 있으며, 신녕(新寧)의 문과(文科)로 형조정랑(刑曹正郞)인 김함(金緘)과 학행으로 추중된 김응시(金應時)와 김응호(金應虎) 등이 있다.
세거지는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와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는 김흡(金潝)의 후손이 세거하는 황강리,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에는 김대해(金大海)의 후손이 세거하는 반정리와 자포리,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는 김윤여(金潤礪)와 김광려(金光礪)의 후손이 세거하는 석촌리와 김함(金緘)의 후손이 세거하는 화산리,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는 김응시(金應時) 후손이 세거하는 삼창리 한천마을 등이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대곡리에 김언태 쌍효각(金彦太雙孝閣)이 있고,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는 황강리에 경주 김씨 지사공종택(慶州金氏知事公宗宅), 김취려(金就礪)의 남강정사(南岡精舍), 김준희(金俊熙)의 소강정(小岡亭), 김필권(金弼權)의 동강재(東岡齋)가 있다.
또 양평리에 김각(金塙)의 교자정(喬梓亭), 고천리에 김대해(金大海)와 김연(金演) 등을 제향하는 고천서원(古川書院), 삼매리에 김자양(金自養)의 묘재인 증산재(甑山齋), 김응생(金應生)의 자양서당(紫陽書堂), 김완(金完)의 동린각(東麟閣)이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는 화산리에 김함(金緘)의 농은재(農隱齋), 석촌리에 김윤여(金潤礪)와 김광려(金光礪) 형제의 석계정(石溪亭)이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는 삼창리에 김응시(金應時)의 모암정(矛巖亭), 김익(金瀷)의 송와정(松窩亭)이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에는 용산리에 김준(金濬)과 김응생(金應生) 양대의 묘재인 원모재(遠慕齋), 김흡(金潝)의 묘재인 추모재(追慕齋), 노항리에 김경용(金慶鎔)의 간산재(澗山齋), 김명삼(金命三)의 경모당(敬慕堂), 김익상(金翊祥)의 묘재인 운포재(雲浦齋)가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에는 삼포리 김석휘(金錫輝)의 박봉정(璞峰亭), 칠전리 김백연(金白鍊)의 묘재인 율곡재(栗谷齋)가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에는 북리에 김경미(金竟美)의 용산정(龍山亭), 서당리에 김호(金琥)의 묘재인 금산재(金山齋), 김기(金琦)의 묘재인 오산재(鰲山齋), 반정리 김정(金靖)의 옥계정(玉溪亭)과 반계서당(磻溪書堂), 김기(金琦)의 석담정(石潭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