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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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智健 |
영어공식명칭 | Jang Jigeon |
이칭/별칭 | 주오(周悟),산간(山澗)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지품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709년 - 장지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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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80년 - 장지건 사망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지품리 |
거주|이주지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지품리 |
사당|배향지 | 충효각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지품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인동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효자.
[개설]
장지건(張智謇)[1709~1780]은 국상(國喪)을 당하자 부모의 상례처럼 치렀으며, 도적을 막다가 해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가계]
장지건의 자는 주오(周悟), 호는 산간(山澗)으로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인동장씨 영덕파조인 장맹순(張孟洵)의 8대손이며, 충효를 인정받아 정려를 받은 장윤경(張允慶)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장응룡(張應龍)이며, 아버지는 장임유(張任儒)이다. 부인은 안응두(安應斗)의 딸 순흥안씨(順興安氏)이다. 아들은 운암(雲巖) 장세기(張世紀)[1696~1754]이다.
[활동 사항]
장지건은 1720년(숙종 46) 숙종이 승하하자, 부모 상을 당한 것처럼 통곡하고는 여막에서 죽만 먹었다. 당시 한밤중에 도적이 다른 사람의 벼를 약탈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막았다. 도적은 범죄를 감추기 위해 장지건이 머물던 여막에 불을 질러 장지건을 숨지게 하였다. 이를 발견한 장지건의 아들 장세기(張世紀)는 원수를 갚기 위하여 흉수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도적을 잡을 수 있었다. 장세기는 도적을 불에 태워 죽임으로써 원수를 갚았다. 그 후 스스로 관에 자수하였다. 인근의 사람들이 장세기를 효자라 칭하며 장지건·장세기 부자의 행적을 관아에 보고하자, 영덕 관아에서는 감영에 장지건·장세기 부자의 행적을 보고하였다. 감영에서는 이를 근거로 국왕에게 보고하여, 특명으로 장지건·장세기 부자에게 충효정려가 내려졌다.
[묘소]
『인동장씨대동보』에는 판치(板治) 등남(嶝南) 간좌(艮坐)라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지품리에는 장지건과 아들 장세기, 증조할아버지 장윤경 및 현손 장성린(張聖麟)·장수의(張守義) 등을 함께 배향한 충효각(忠孝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