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영덕문화대전 > 영덕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근현대 >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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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영덕군의 역사. 경상북도 영덕군은 광복 이후부터 6.25전쟁까지 분단 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커다란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해방 직후 영덕면을 포함한 각지에서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준비 기관으로 치안유지회와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미군 진주 후에는 인민위원회가 결성되어 미군이 영덕을 완전 장악하기 전까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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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에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고, 1953년 7월 27일에 휴전 협정으로 종결되었다. 전쟁 기간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치러진 주요 전투는 지품 삼화동전투, 축산 도곡지구전투, 장사상륙작전, 해병대 영덕지구전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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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기간 중 경상북도 영덕군 지역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 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8일부터 7월 15일에 영덕경찰서 소속 경찰과 국군 제3사단 23연대 소속 군인이 영덕 지역의 국민보도연맹원과 예비 검속자 270여 명을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소재 어티재, 강구 앞바다, 뫼골[화개리] 등지에서 집단 학살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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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일원에서 일어난 좌우익 대립 사건.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경상도 대구 지역은 식량이 부족하였다. 미군정 당국의 실정(失政) 때문이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해 1946년 10월 1일에 대구에서 일어난 폭동은 삽시간에 경상북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0월 4일 영덕군 달산면의 좌익 세력이 우익 진영 및 행정 관리를 구타하고 민가를 파괴·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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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1970년 4월부터 전개된 지역사회 개발 운동. 새마을운동은 1970년부터 근면·자조·협동의 기본 정신을 실천하고자 범국가적·범국민적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새마을운동의 기본 정신을 추진하기 위해 1970~1973년 새마을 기반조성사업 추진, 1974~1976년 생산 기반시설 정비와 확충, 1977~1979년 소득 기반 완비와 농외 소득원 확대를 위한 사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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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송천리에 있는 1953년에 건립된 개신교 교회. 영덕 송천예배당의 교인들은 1919년 3월 18일 경상북도 영해면과 창수면에서 일어난 3.1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당시 약 90여 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약 20여 명이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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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의병대장 신돌석장군 유적지. 개항기 의병장 신돌석(申乭石)[1878~1908] 장군의 애국 충절을 기리고자 1999년 조성한 유적지이다. 신돌석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1896년 19세 때 처음 거병했으며, 1906년에는 영릉의진(寧陵義陣)을 조직하고 경상도·강원도 일원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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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4일부터 19일까지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일어난 전투.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를 거듭하여 같은 해 8월에는 낙동강 일대까지 밀렸다. 낙동강 일대에서 국군과 북한군은 약 1개월 반 동안 치열하게 싸웠다. 낙동강 전투에서 전세를 뒤집기 위하여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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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 시기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일어난 좌익과 우익 간의 충돌과 대립. 광복 이후 4개월이 지난 1945년 12월 말 무렵 한반도의 신탁통치를 놓고 모스크바에서 3개국 외상이 회의를 가졌다. 마침내 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되자 한반도에서는 좌우익 간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이 빚어졌다.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은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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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리에 있는 현충 시설. 경상북도 영덕군과 지역 내 인사들로 구성된 영덕충혼탑건립 추진위원회의 결의로 1966년 영덕면 덕곡리 청련사(靑蓮寺) 정원에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부지는 26.4㎡이다. 당시 탑의 둘레는 20m, 높이는 12.2m였다. 탑의 상단부에는 '충혼탑'이라 음각하였다. 그 뒤 협소한 부지 등을 이유로 1979년 1월 영덕읍 화개리 산중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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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 29일부터 2월 23일까지 한국 해병 제1연대가 경상북도 영덕에서 치른 공비 토벌 작전. 6.25전쟁이 발발하고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있었다. 중공군의 공세에 유엔군은 밀려 1951년 1월 4일에 서울을 다시 내주고 그곳에서 60㎞ 남쪽의 오산과 삼척을 잇는 선까지 후퇴하였다. 이 무렵 경상북도 영덕 일대 산악 지역에서는 북한군의 유격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