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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231
한자 龍院里萬歲運動
영어의미역 Cheers Movement in Yongw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문영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항일운동|민족해방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19년 4월 1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19년 4월 1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용원장터[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
관련인물/단체 은경옥|이희갑|이강렴|손승억|윤주영|윤복영|이강호|김은배

[정의]

1919년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역사적 배경]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폭압적인 무단통치에 저항하여,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 공원에서는 군중들이 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이 일어났다. 이 시위의 맹렬한 불길은 삽시간에 전국 방방곡곡으로 번져 나갔다.

[경과]

당시 신니면의 유일한 사립학교인 용명서당(龍明書當) 선후배인 은경옥(殷慶玉)[26세], 이희갑(李喜甲)[24세], 이강렴(李康濂)[18세], 손승억(孫承億)[26세], 윤주영(尹周榮)[23세], 윤복영(尹福榮)[36세], 이강호(李康滈)[25세], 김은배(金殷倍)[28세] 등은 충주에서도 민중의 독립 의지를 알리고자 4월 1일 충주군 신니면 용원 장날에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3월 31일 이희갑의 집에 모여 은경옥·이희갑·이강렴은 스스로 독립운동 대표가 되어 조선의 독립 계획을 고취하는 내용의 독립선언서 일곱 통을 복사하고, 손승억이 이를 등사하였으며, 모두 함께 참여하여 태극기 19폭을 제작하였다.

[결과]

4월 1일 은경옥 등은 용원장터에 나가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미리 마련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이들은 모두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만세 시위를 주도한 은경옥은 징역 1년, 이희갑·손승억은 징역 8월, 윤주영·윤복영·이강호·김은배는 징역 6월에 처해졌다.

[의의와 평가]

일제의 가혹한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민족 독립운동으로서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충주 지역민들의 희생과 노력의 증거이다.

[참고문헌]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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