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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희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1487
한자 鄭泰熙
영어음역 Jeong Taehui
이칭/별칭 계운(桂雲),백양(白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구완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성별
생년 1898년연표보기
몰년 1952년연표보기
본관 영일
대표경력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계운(桂雲)·백양(白洋). 아버지는 정낙중(鄭洛中)이다.

[활동사항]

정태희는 1919년 3·1운동 후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평양에서 동지들과 함께 대한국민총회(大韓國民總會)를 조직하고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농민들의 지식을 개발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다짐하였다. 그해 12월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임되었다. 1921년 7월 임시정부 재무부 참사, 10월에 대태평양회의(對太平洋會議) 외교후원회 간사가 되었다. 1923년 임시의정원 제1분과 상임위원회의 상임위원장, 이듬해 재무부 참사(參事)가 되었다.

1927년 임시의정원 약헌(約憲) 기초위원을 차례로 역임했고, 또한 같은 해 상해한인청년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29년 중국본부 한인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이 되었다. 같은 해 1월 좌우 대립을 지양하기 위해 추진된 유일당 운동의 과정에서는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 집행위원회의 상무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8월 항일의 역량을 모으는데 한편 상해 교민단의 총무로 피선되어 교민들의 안전과 재산 보호 등에 힘썼다. 이후 국내에 잠입했다가 체포되어 1934년 6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고 출옥한 후에는 향리에 은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한민국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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