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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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일제의 사법기관. 조선총독부는 식민 지배를 시작하면서 각 지역에 식민지 사법기관을 설립하여 한국인을 통치하였는데, 공주지방법원 충주지청도 그 중 하나로 설립되었다. 1894년 형조가 폐지된 후 법무아문(法務衙門)이 설치되고, 다음 해인 1895년 법무부로 개칭되면서 같은 해 7월 「재판소기구법」이 발포되었다. 충주 지역에 근대적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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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5월 25일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던 관찰부를 청주시로 이전한 일. 일제는 통감부 설치 이후 보호국 체제의 완결이라 할 지방제도 개정을 통해 식민 통치의 항구적 기반을 세우고자 하였다. 일제가 추진한 지방제도 개정의 골자는 갑오개혁 시기에 마련된 정부-도-군으로 이어지는 지방제도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군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면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여 촌락 사회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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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후 조선의 유교 중심 교육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통변학교·광혜원 등을 세워 외국어·서양 의학을 가르쳤고, 일반 교육을 위해 1885년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 1886년 조정에서 세운 육영공원이 최초의 근대 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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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수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논고개는 노은고개 아래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은은 본래 충주군 역인 노은현(老隱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논고개의 논은 ‘노은’에서 모음 ‘으’가 탈락함으로써 생긴 어형이다. 논고개의 한자 지명인 노현(老峴)과 노치리(老峙里), 별칭인 노고개가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논고개는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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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이안면과 유등면을 통합하면서 첫 글자를 따서 이류면이라고 했다. 2012년 대소원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류면이 역사서에 처음 언급되는 것은 『고려사(高麗史)』이다. 충주목조에 익안현(翼安縣)이 나오는데 익안이 바로 이안이다. 이류면의 바탕이 된 이안면과 유등면은 영조 때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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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대소원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북도 충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주덕읍], 12개 면[살미면·수안보면·대소원면·신니면·노은면·앙성면·중앙탑면·금가면·동량면·산척면·엄정면·소태면], 12개 행정동[성내/충인동·교현/안림동·교현 2동·용산동·지현동·문화동·호암/직동·달천동·봉방동·칠금/금릉동·연수동·목행/용탄동] 중 대소원면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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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내리는 조선시대 충주목이 관할하는 38개면 중 덕면(德面)에 소속되어 있었다. 덕면이 관할하는 마을을 처음으로 기록한 지리지는 1759년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로 상동리, 중동리, 천서리, 천동리, 금곡리 등 5개리가 기재되어 있고, 그 이후에 발행한 지리지에는 아래 표와 같이 마을 이름이 늘거나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표를 보면 『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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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조선 말기에 동량곡(東良谷)이라 하다가 1910년 동량면으로 개칭되었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 동량면이라 하여 운교(雲橋)·용대(龍垈)·대야(大也)·사천(沙川)·배일(排日)·마흘(馬屹)·황전(黃田)·장선(長善)·모천(毛川)·건지(乾地)·조돈(早遯) 등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교(龍橋)·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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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조선국세조사보고’의 직업별 인구 항목에 보면, 충주군 전체 수산업 인구 25명 중 엄정면에서 수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9명이었다. 물론 엄정면에서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은 목계 밖에 없었으므로 이 9명은 모두 목계 주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해방 이후에도 어업에 종사하는 마을 사람들이 계속 있었으며 최근까지 목계에서 어업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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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충주군 북변면에서 충주군 읍내면으로 편입되어 목수동·행정리·미력리·지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목수동과 행정리의 머리자를 따서 목행리라 하였다. 목수(牧水)는 옛날 충주목의 북쪽 물가라는 뜻이며, 행정(杏亭)은 목수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큰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정이라고도 하였는 데, 이 은행나무는 6·25전쟁 때 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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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지역에는 수주리, 월은리, 문박리, 팔봉리가 있었다. 이 중 문박과 수주에서 각각 한 자씩 따서 문주리라는 명칭이 처음 만들어졌다. 문주리에 대한 기록은 1760년에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 나온다. 당시 유등면은 주음성리, 산정리, 팔봉리로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다.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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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충주역이 있어 역전동이라 불렀으나 충주역이 봉방동으로 이전하여 동 이름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음으로 ‘선진 문화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자’는 뜻에서 문화동(文化洞)으로 개칭하였다. 문화동은 원래 충주성(忠州城) 서문 밖 충주천 건너에 있던 작은 마을로 서북쪽으로 충주 탄금대로 가는 길과 서쪽으로 서울과 청주로 가는 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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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찰. 백운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충주군 북쪽 태봉산에 있다고 하였다. 사원 입구 남쪽에 충주 경종 태실과 태실비가 있다. 백운암의 법당 안에는 충주 백운암 철조여래좌상이 있는데,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및 대원사 충주 철조여래좌상과 함께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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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화곡리와 노은면 수룡리, 중앙탑면 하구암리에 걸쳐 있는 산. 병풍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충주군 북쪽 1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풍혈(風穴)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병풍산의 북사면에는 하구암천이 동류하면서 유역에 퇴적평야를 이루고 있어 저지의 평야에서 병풍산을 바라보면 병풍처럼 생긴 것으로 보인다.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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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충주군 이안면 면소재지가 있던 동네라 해서 본리라 불렀다. 본리 지역에 대한 기록은 1760년에 발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온다. 당시 이름은 당저리였다. 여기서 당저란 당집 아래란 뜻으로 이곳에 당집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생겨났다. 이곳은 또한 이안면 면소재지여서 창고도 있었다고 전한다. 본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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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의 사과 주산지는 경상북도 대구 근교였으나 지구 온난화 등으로 주산지가 충청도와 경상북도 북부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사과 재배의 적지가 바뀌게 되었다. 특히 충주 지역은 남한강 상류여서 퇴적토가 많고 산지는 사질양토로 배수가 잘 되고 유기물 함량이 타 지역에 비하여 우수하여 최적의 사과 재배 여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충주시는 지역 특성에 맞는 재배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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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송강리 상산(上山)마을과 영덕리의 계척(桂尺)마을에서 ‘산(山)’자와 ‘척(尺)’자를 따 산척면(山尺面)이 되었다. 또한, 천등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늘로 오르는 길인 천등산의 가장 지척에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뜻에서 산척면이라 했다고 한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 산동면이라 하여 정암(鼎岩)·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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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살미면(乷味面)의 옛 이름은 사을미면(沙乙未面)이다. 사을미란 모래가 많은 물가라는 뜻으로, 마을이 남한강변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모래가 많이 쌓이게 되어 붙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한편 바뀐 명칭인 살미의 ‘살(乷)’은 물결이 빠르다는 뜻으로, 살미면 지역이 계곡이 좁고 물살이 빨라 붙여진 이름이다. 또 ‘미(味)’는 이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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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선거의 종류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지방의회의원 선거 등이 있다.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실시되고 나머지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충주 지방에서의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는 1952년 8월 5일 국민 직선에 의해 치러진 제2대 대통령 및 제3대 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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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 옛날에 성태양면(省太陽面)이라 칭했으며, 율현리(栗峴里)·덕산동(德山洞)·청룡동(靑龍洞)·무동(武洞)·조기암리(造奇岩里)·부동리(釜洞里) 등의 6개 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조선 중기에는 태양면(台陽面)·태양소내면(台陽小內面)이라고도 불렀으며, 중청동(中靑洞)의 자작에서 해마다 성황제를 올리는 풍습이 전해 오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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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지리상으로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충주는 선사시대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충주시 용탄동과 조동리 등의 유적과 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를 시사해주고 있다. 이들 유적과 유물은 선사 문화의 시원과 이동, 전파 및 취락의 형태를 밝혀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들 선사 유적이 형성된 배경은 어업에 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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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 충주군 북변면에서 충주군 읍내면으로 편입되어 구동·용동·사라리·기탄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용동과 기탄의 머리자를 따서 용탄리라 하였다. 용동은 옛날 용소에서 용이 등천하였다는 전설이 있고, 기탄은 용골 서북쪽에 있는 여울로 경사가 심하며, 여울 가운데에 바위가 있어 물이 두 갈래로 흐른다 하여 가리여울이라 하였으며 가리여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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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유등면장 이순교의 송덕을 기리는 비. 1914년 충주군의 유등면과 이안면이 통합되어 이류면[현 대소원면]이 되기 직전인 1913년 유등면장을 역임하면서 면민을 편안케 하고 구휼한 이순교(李淳敎)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장승백이 삼거리에 건립하였다가 1992년 7월에 매산경로당이 건립되면서 송덕비를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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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의 역사. 1910년 8월 한국병합이 체결됨에 따라 일제의 조선 침략이 완성되었다. 일제는 종래의 통감부를 폐지하고 더 강력한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1910년 10월부터 한반도에 대한 구체적인 식민지 지배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지배정책은 시대에 따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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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지역민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행사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충주에서 정치는 비제도적인 정치 영역과 제도적인 정치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비제도적인 정치 영역은 해방 직후 정부 수립 이전 시기, 4월 혁명과 5.16쿠데타 직후의 군부정권 시기, 그리고 유신체제 이후 등장한 권위주의 체제에서의 민주화 운동 시기 등에서 활동한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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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산. 1898년에 편찬된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의 산천조에서 정토산은 충주군에서 북쪽으로 30리에 떨어져 있는 천등산의 줄기로서 일명 개천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토산의 고리실(일명 고라곡) 골짜기 주변은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천하명당이라고 한다. 연화부수형은 연못 속에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형상인데 황참의공의 며느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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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면장 정하현의 불망비. 정하현의 출생 및 성장에 관하여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대한제국 시대의 단편적인 기록을 보면, 1902년(고종 39) ‘정하현임내부주사서판임관육등임충청북도관찰부주사서판임관육등(鄭夏鉉任內部主事敍判任官六等任忠淸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六等)’이라는 기록이 『의정부총무국관보』 제2299호에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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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충주는 1395년(태조 4) 지방제도가 개편된 후 충청감영의 소재지이면서 목(牧)으로서 대원(大原)·예성(蘂城)으로 불렸다. 관내의 호수는 1,871호이며, 인구는 7,452명에 이르고, 시위군 440명과 선군(船軍) 465명이 있는 대읍이었다. 1458년(세조 4)에 충주진(忠州鎭)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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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주덕읍은 남쪽은 과거 주류면 지역이고 북쪽은 과거 덕면 지역이다. 면적에 비해 들이 넓고 교통이 편리해 충주시 읍면 중 인구가 가장 많다. 1914년 지방 행정 조직 개편에 따라 충주군 덕면과 주류면을 통합하여 충주군 주덕면이라 하였다가,1995년 충주시 주덕읍으로 승격되었다. 1872년에 나온 「충주목지도(忠州牧地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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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가흥면과 금천면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가금면이라고 했다. 가흥면은 가금면의 북쪽에 있었고 금천면은 가금면의 남쪽에 있었다. 2014년 개칭된 중앙탑면이라는 명칭은 중원문화의 중심지였던 이 지역에 세워진 통일 신라 시대 석탑인 국보 제6호 충주 탑평리 칠층 석탑의 별칭인 중앙탑에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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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이 곧은 골짜기로 되어 있어 곧은골 또는 직곡이라 하였는 데, 1914년 구운리(九雲里)와 발티[發峙]를 병합하여 직동이라 하였다. 1760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으로 동명이 나타나며, 당시에는 충원현의 남변면에 속했다. 1895년 충주군 설치로 충주군 남변면에 속하였고, 1912년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는 충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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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충주목과 충주군 소재지로서 충주읍내, 남변면(南邊面)의 중부리(中部里) 또는 성내동(城內洞)이라 하였다. 광복 후에 충의동으로 개칭되었다. 일설에 충의동은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을이라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여지도서 (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원래 이 지역은 남변면의 중부리 지역으로 충주관아(忠州官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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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충주목, 충주군의 소재지로서 충주읍내, 남변면(南邊面)의 중부리(中部里) 또는 성내동(城內洞)이라 하였다. 광복 후에 충인동으로 개칭되었다. 충인동은 충성스럽고 어진 마음씨와 자애로운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여지도서 (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원래 이 지역은 남변면의 중부리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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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조선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을 기하여 부·군의 구역을 개편하고, 군의 수를 대폭 감축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1910년 당시 12개 부, 317개 군은 크게 감축되어 220개 군으로 줄어들어 들었고 109개 군이 폐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충청북도에서도 청풍·청안·문의·회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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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조직된 자생적 행정기구. 1945년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지방 지부는 대부분 지방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충주군에는 충주군 인민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충청북도의 10개 군 중 충주군, 제천군, 단양군, 청원군, 보은군, 옥천군, 영동군 등 7개 군에는 인민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 중에서 인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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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유림 단체. 지역 유림들이 유교 문화와 사상, 예절의 보존과 더불어 지역의 효자·절부(節婦)를 표창하기 위해 1921년 설립하였다. 1925년 11월 1일 충주명륜당에서 충주군 내의 효자와 절부를 기리기 위한 표창식을 거행하였다. 이날 표창자로는 금가면 절부 유복남(劉卜男), 산척면 열부(烈婦) 엄지북(嚴芝北), 엄정면 효자 유지호(柳志浩), 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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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6월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1895년 4월 내부대신 박영효의 주도 아래 추진된 제2차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종래의 의정부 관제 대신 일본식 내각제를, 비대한 궁내부 관제도 대폭 간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앙관제 개편이 이루어졌다. 중앙관제 개편에 이어, 6월에는 행정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종래의 8도제 대신 소지역주의를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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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국세청 산하 기관. 나라 살림의 근원이 되는 국세의 징수와 세원 관리를 위해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 개청하여 충주군, 음성군, 제천군, 단양군을 관할해왔으나 1965년 제천군과 단양군을 관할하는 제천세무서가 별도로 분리되어 나갔다. 1976년에는 충청북도 괴산군의 불정면·연풍면·소수면·감물면·장연면 등 5개면이 추가로 관할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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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북부에 위치한 시. 충주시는 중부 내륙 광역권의 거점 도시로 수도권에 인접해 있고 풍부한 용수로 기업하기 좋은 산업 기반이 구축된 도시이다.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전국 교통망의 중심이며, 남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중원 문화의 중심 도시이자, 충주호와 월악산, 수안보온천·앙성온천·문강온천이 있는 국제적인 관광 도시이다. 충주시를 상징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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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충주시 관할 행정 기관. 충주시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서 설치되었다. 충주 시정을 운영함에 있어 하부 행정 기관을 두어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고, 주민의 복지 증진과 지역 발전을 추구한다. 오늘날의 충주시는 시대와 역사를 달리하며 지명과 영역이 수시로 변천해 왔다. 삼국시대에는 낭자곡성·낭자성·미을성·국원성·국원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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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충주에 있었던 헌병 경찰 기관. 충주 지역에서 식민화에 반대하는 한국인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선 말기 일제의 감독 기관이었던 통감부는 충주 지역에 경비 기관으로 경찰서를 배치하는 것 이외에, 충청북도 천안헌병분대의 일 구역으로 충주헌병분견소를 설치하고 헌병과 보조원을 배치하여 경찰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19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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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미군정이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실시한 미곡 수집 정책. 미군정 당국은 1945년 10월 5일에 일반고시 제1호 「미곡의 자유시장」을 공포해 일제가 1942년 이후 본격적으로 실시해오던 식량통제 정책을 해제했다. 하지만 미곡(米穀)의 자유시장 정책은 미가(米價)의 폭등만 야기하며 사실상 실패하게 되었다. 미군정 당국은 1945년 11월 19일에 일반고시 제6호 「미곡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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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의 영역을 국가 행정상의 목적에 따라 나눈 행정 단위. 행정구역은 모든 행정의 기초가 되는 개념일 뿐만 아니라 지역 구분으로 주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충주시의 행정구역은 13개 읍면과 12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2개 동은 다시 26개 법정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행정구역을 나누는 일은 그 지역의 전통과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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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1945년 8·15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환희와 함께 혼란과 고통도 가져다주었다. 충주도 해방 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노정되면서 많은 대립과 갈등이 야기되었다. 좌익과 우익의 갈등 결과, 남북이 분단되었으며,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켜 500만 동족을 사상하였다. 충주는 우리나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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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 뒷산에 모양이 마치 범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호암(虎岩)이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전설로는 어느 선비가 이웃 마을 직동에서 내려오던 중 관음사 옆 큰 바위에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호암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895년 충주군 설치로 충주군 남변면으로 개칭되었고, 1912년 『구한국 지방행정구역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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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봉세관 홍재익의 송덕비. 홍재익의 관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훈령조회존안(訓令照會存案)』 등의 기록을 통하여 추정해 보면, 1899년(고종 36) 12월 23일 내장원소관충청북도각양둔토사검위원겸독쇄관(內藏院所管忠淸北道各糧屯土査檢委員兼督刷官)으로 임명된 이후 충주군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