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10일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의에 따라 열린 미소공동위원회가 1947년 8월 12일 완전히 결렬되어 한국 문제가 표류하게 되자, 미국은 9월 17일 유엔 총회에 한국의 독립 문제를 정식 의제로 상정하였다. 9월 21일 유엔 총회 운영위원회가 유엔 총회 의제에 포함시킬 것을 통과시키고, 23일 본회의에서 의제 채택...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충주와 개신교와의 만남은 서울에서 충청도에 이르는 길목과 무관하지가 않다. 길은 곧 사람과 문물, 그 모든 것의 흐름이자 통로이기 때문이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기 전 충청도는 남도와 경상도 그리고 서울을 잇는 길목으로 세 갈래 길이 있었다. 서울에서 한강을 건너 경기도 과천~시흥~수원~성환을 거쳐...
충청북도 초대 관찰사 박규희의 집정 모습을 극화한 연극. 충청북도가 고종황제의 칙령에 의해 설치되고 충주가 충청북도 도청 소재지가 된 정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충주시의 도움을 받아 충청북도 초대 관찰사 박규희의 집정 모습을 극화하여 공연하였다. 1996년 8월 1일 초저녁 충주시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주지부장, 한국연극협회 충주지부장, 충주시 문화관광...
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박기서(초대 마수리 농요보존회장) 씨는 1972년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 대통령상 수상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수리 농요가 1969년 방송을 탔다면, 1971년부터 1972년까지는 마수리 농요가 공개석상에서 인정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박기서 씨의 기록에 따르면 1971년부터 충북도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972년 10월에 제13회 전국 민속예...
1894년(고종 31) 4월 초부터 약 6개월 동안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전라도 고부의 동학 접주(接主)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교조의 신원과 외세를 물리칠 목적으로 일으킨 농민운동이다. 충청북도 지역은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충청북도는 1893년 3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서 옛날 뱃길이 무사하고 내륙의 장사가 잘 되기를 비는 민속 의례. 목계 지역은 충북선 철도가 가설된 1930년대 이전까지 남한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목계 지역이 남한강 수운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성황을 누릴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은 가흥창(嘉興倉)의 설치와 존속에 있다. 가흥창은 1465년(세조 11)에 설치되어 개항 전까지 존...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부인은 윤치호(尹致昊)의 조카이다. 이종훈은 25세 때 동학에 입교하였다. 1894년 9월 18일 북접교주 최시형이 각 지역 접주들을 청산에 소집하고 기포할 것을 지시하자 충주에서 기포하였다. 10월 초순에는 농민군을 이끌고 괴산에서 관군과 충청북도 충주시 가흥면에 주둔해 있던 일본 병참군과 접전하였다. 이후 공주 우...
1979년 김풍식·이재준이 충주 지역 기와 사진을 모아 놓은 도록. 1970년대 초반부터 충주 지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예성동호회와 청주 지역의 서원학회가 주축이 되어 충청북도의 문화유산을 찾아다녔다. 이들이 모은 자료를 예성동호회와 서원학회 소속의 김풍식·이재준 두 작가가 도록으로 만들어 햇빛을 보게 되었다. 목조 건축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기와는 시대적·사상적 측면을 기초...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조선총독부는 1914년 3월 1일을 기하여 부·군의 구역을 개편하고, 군의 수를 대폭 감축하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1910년 당시 12개 부, 317개 군은 크게 감축되어 220개 군으로 줄어들어 들었고 109개 군이 폐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충청북도에서도 청풍·청안·문의·회인·영...
지남기 선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박기서[1932~ ] 씨이다. 1953년부터 지남기 선생과 친교를 맺었으며 1960년대 후반에는 지남기 선생과 함께 마수리 농요를 복원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72년에는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지남기 선생의 메김 소리를 받기도 하고 후렴구를 부르기도 하면서 마수리 농요를 전국적인 무형문화재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