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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134
한자 平野
영어의미역 Plain
이칭/별칭 평지(平地),평원(平原)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집필자 조헌

[정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고도가 낮고 기복이 거의 없는 평탄한 지대가 펼쳐진 땅.

[개설]

평야는 평지(平地)·평원(平原)이라고도 한다. 평야는 그 성인에 따라 퇴적평야와 구조평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천의 퇴적 작용만으로 형성된 평야를 퇴적평야 또는 충적평야라고 하는데, 선상지·삼각주·해안평야나 이미 형성된 골짜기에 퇴적한 곡저평야 등이 이에 속한다. 홍수 때에는 하천의 유로에서 넘쳐흐른 강물이 평야면을 잠식하기 때문에 범람원을 이루고 있다.

구조평야는 거의 수평으로 이루어진 고생대층이나 중생대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표면은 오랜 지질 시대의 침식으로 표면이 낮아져 광대한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그 때문에 침식평야라고도 한다. 북아메리카의 중앙평원, 아마존강 유역의 평야, 서시베리아평원, 유럽평원, 키르기스평원 등은 모두 구조평야이다.

한국의 평야는 낙동강 하구에 발달한 퇴적 지형을 배경으로 한 김해평야를 제외하면 대부분 침식평야이지만 대륙의 구조평야에 비해 그 규모가 현저하게 작다. 평야는 낮고 평탄한 지형을 이루는 곳이 많기 때문에 농경지는 물론 교통로나 인간의 거주 지역으로 적당하다.

충주 지역의 평야는 크게 연속성이 높은 중앙의 충주분지에 발달한 충주평야와 산지 내부 하곡을 따라 형성된 좁고 긴 곡저평야로 구분될 수 있다. 이들은 편마암이나 옥천계 퇴적변성암으로 구성된 주변 산지와는 달리 대부분 화강암이 분포하는 지역으로서, 심층 풍화되어 침식을 받아 저기복의 구릉대나 범람원을 이룬다.

[충주평야]

충주 지역은 동부 태백산지, 남동부 소백산지, 서부 차령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서, 주로 넓게 펼쳐진 생활 공간은 중앙부에 집중되어 있다. ‘충주평야’로도 부를 수 있는 이곳은 충청북도에서 청주의 미호평야 다음으로 큰 규모를 지닌다. 물론 ‘충주평야’라는 용어는 실제로는 남한강달천이 만나는 자리에 발달한 넓은 범람원을 일컫는 말로서, 달천평야로도 불린다. 다만 여기서는 충주시의 평야를 다루고 있으므로, 충주분지 내부의 범람원과 구릉대를 중심으로 한 저기복 평탄지 전체를 충주평야로 정의하기로 한다.

1. 남부 달천평야

충주평야는 다시 남한강을 기준으로 남쪽의 달천평야와 북쪽의 금가구릉대로 나뉜다. 달천평야는 보은·괴산 쪽에서 흘러 온 달천남한강 본류로 유입하는 과정에서 측방 침식이 진전된 결과 비교적 넓고 평탄한 범람원을 이룬 곳인데, 그 규모는 남북 약 4~5㎞, 동서 약 2~2.5㎞ 정도이다. 그 동쪽으로는 충주 시가지가 자리잡고 있는 구릉대, 계명산남산 서편에 발달한 완만한 경사의 산록대가 펼쳐져 있어 광역 달천평야를 만들고 있다.

달천평야는 큰 하천에 인접하여 범람이 잦아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던 저습지였다. 즉, 조선시대에 실제 이용되었던 농경지는 범람을 피할 수 있는 충주 시가지 주변의 구릉대와 넓은 산록대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점차 달천남한강변에 인공 제방을 축조하기 시작하면서 저습지가 개간되었으며, 근대화 과정에서 이곳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구릉 사이의 곡지에 만든 저수지가 호암지대제저수지이다. 충주가 일종의 물의 도시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시가지에 인접한 이 저수지들과 고개(마지막재) 하나만 넘으면 곧바로 볼 수 있는 충주호, 남한강조정지댐 상류에 인공으로 조성된 탄금호 등 많은 호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2. 북부 금가구릉대

남한강 북쪽 금가면엄정면·산척면 일부에 걸쳐 펼쳐져 있는 금가구릉대는 넓은 저습지의 발달은 미약하지만 달천평야에 비해 그 규모는 두 배 가량 더 크다. 남으로는 탄금대 건너편에서부터 동량면 소재지, 북으로는 엄정면 목계리에서 산척면 소재지에 이르는 범위를 포괄한다.

이곳은 남한강이 태극 모양으로 휘감아 돌며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식되지 않은 채, 화강암의 저기복 구릉대가 밀도 높게 발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개석하며 흐르는 영덕천·대전천 등 소하천들을 따라서만 좁은 저지대가 길게 분포한다. 이러한 양상은 토목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연속적으로 평지가 이어지는 저습지가 중요하지만, 과거에는 오히려 범람을 피할 수 있으면서도 곳곳에 농경지로 개간이 가능한 땅이 많은 구릉대의 역할이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금가구릉대는 충주 지역의 전통적인 자족력을 뒷받침했던 주요 공간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일례로 청주의 배후지인 미호평야의 경우, 미호천변을 따라 형성된 넓은 저습지들이 현재 핵심적인 농경지이지만, 불과 100여 년 전에는 넓게 펼쳐진 저기복 구릉이 발달한 청원구릉대나 북일면~북이면 일대의 구릉대가 오랫동안 이용되어 왔던 전통적인 농경지였다.

[곡저평야]

충주의 생활 공간은 달천평야와 금가구릉대가 가장 큰 평야 지대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지역민들의 삶에 중요한 곳이 바로 산지 내부의 곡저평야이다. 충주의 곡저평야는 대체로 높은 산지와 좁은 골짜기가 많은 동부보다는 비교적 넓은 범람원과 낮은 구릉들이 하천변을 따라 형성된 서부 차령산지 일대에 주로 분포한다.

차령산지를 개석하며 남한강달천으로 유입하는 소하천인 앙성천·한포천·요도천은 모두 차령산지 본줄기인 충주시 서쪽 경계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데, 대체로 골짜기가 넓고 내부에는 좁고 긴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 지역에서는 앙성천 유역의 앙성평야, 한포천 유역의 노은평야, 요도천 유역의 신니평야·주덕평야·이류평야로도 불린다. 그 중 주덕평야가 가장 넓고 크다.

동부에 비해 서부 산지를 흐르는 하천을 따라 골짜기가 더 넓은 것은 모두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화강암이 분포하기 때문이다. 동부 산지는 대부분 심층 풍화가 되지 않는 옥천계 퇴적변성암 지대나 편마암 지대를 끼고 있어 골짜기가 그리 넓은 구간이 별로 없다.

[의의와 평가]

한반도 중부 내륙의 중심에 위치하여 중원 문화의 고장으로 불리어 온 충주는 청주로 도청 소재지가 이전되기 전까지는 충청북도의 행정 중심지였다. 이는 충주분지 일대를 중심으로 한 넓은 평야지대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간선도로인 영남로가 통과하는 충주목이 위치한 지방의 주요 구읍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경부선의 부설과 남한강 수운의 쇠퇴로 인해 청주로 중심지가 이관됨으로써 충주의 전성기는 일단락되고 만다. 근대화 과정에서도 충북선이 지나고 충주비료공장이 입지하는 등 약간의 공업 발달이 진전되지만, 국가 전체적인 발달의 중심축에서 벗어나 있고 주요 고속도로조차 건설되지 못하여 과거의 명성에 비해 도시의 성장이 지체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수도권의 과밀화 현상에 따라 분산 압력이 증가하자 이를 흡수해 줄 만한 공간이 요구되었다. 바로 차령산지 이남에서 넓은 평야와 산간 분지들이 불연속적으로 분포하는 충청도의 ‘중부 내륙 평야대’이다. 이는 남서부의 논산평야에서부터 대전분지, 청주분지, 진천~음성 일대, 충주분지, 제천분지에 이르는 대보화강암 밸트를 따라 형성된 지대에 해당된다. 이 중에서 청주~대전분지는 근대화 과정에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온 곳으로서, 이미 상당 부분이 도시화가 진전되었다.

반면 논산평야나 충주분지, 진천분지 일대는 아직도 시가지의 규모가 작아 여전히 곳곳에 활용될 만한 땅들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충주는 2000년대 이후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영남 지방으로 통하는 제2경부고속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수도권의 인구와 경제적 측면의 분산을 수용할 만한 차후 공간이 바로 충주 지역인 것이다. 충주의 평야는 단순 농경지만이 아니라 새로운 균형 발전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준비된 미래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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