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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523
한자 迂書
영어의미역 Idle Jotting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영조(英祖)[1694~1776]|조현명(趙顯命)[1690~1752]|박문수(朴文秀)[1691~1756]|이종성(李宗城)[1692~1759]
저자 유수원(柳壽垣)[1694~1755]
저술연도/일시 1729년~1737년연표보기
편찬연도/일시 1724년~1776년연표보기
간행연도/일시 1910년 전후
권수 10권
책수 9책
사용활자 필사본(筆寫本)
가로 30.5㎝
세로 19.4㎝
표제 迂書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처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 56-1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실학자 유수원이 쓴 사회개혁서.

[개설]

유수원(柳壽垣)[1694~1755]은 소론 명문가의 후손으로 노론이 득세한 영조 연간에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운하였다. 비록 소론측 중신인 조현명(趙顯命)[1690~1752] 등의 천거와 유수원의 학문적 재질을 인정한 영조에 의해 한때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1755년(영조 31) 나주괘서사건에 연루되어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이로 인해 유수원의 저술 역시 조선시대에는 사장되었다가 일제강점기 이후에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편찬/발간경위]

유수원은 신체적으로 질병에 시달리고 정치적으로 출세하지 못한 채 지방수령으로 전전하던 40세 전후에 『우서』를 저술하였다. 『우서』는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유포되어 읽혔고, 이로 인해 유수원의 학문과 경륜도 높이 평가되었다. 당시 소론의 영수였던 이종성·조현명·박문수 등도 영조에게 『우서』를 읽어볼 것을 권할 정도였다. 『우서』영조가 우활하여 시행할 수 없는 것이 많다고 평했을 만큼 조선 사회의 근본적인 병폐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그 개혁을 모색한 것이었다.

[서지적 상황]

『우서』는 저자가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었기 때문에 19세기까지는 널리 유포되지 못했다. 현재 대부분 1910년을 전후해 필사된 것으로 생각되는 수사본만이 전해지고 있다. 기관으로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일본의 경도대학(京都大學) 하합문고(河合文庫)와 동양문고(東洋文庫) 등에 소장되어 있고, 개인으로는 박승만과 박준서 등이 소장하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할 때 사용한 저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이다.

[형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은 10권 9책으로 되어 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본, 박승만 소장본, 박준서 소장본은 8권 8책으로 되어 있다. 하합문고 소장본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고, 동양문고 소장본은 권을 나누지 않고 5책으로 되어 있다. 하합문고 소장본은 11행 30자로 되어 있고, 나머지 소장본들은 모두 10행 20자로 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의 크기는 가로 30.5㎝, 세로 19.4㎝이다.

[구성/내용]

문답체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구성은 체계 정연한 한 편의 논문 양식을 이루고 있다. 77개 항목이 논지의 전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처음의 6개 항목은 서론에 해당하고, 다음의 69개 항목은 본론에 해당하며, 끝의 2개 항목은 결론에 해당한다.

서론에서는 조선 사회의 가장 큰 병폐를 신분제 사회와 이로 인한 산업의 미발달로 파악하고, 그 해결책은 신분제 질서의 폐기에 있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본론은 신분제 질서의 폐기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벌의 폐단을 논함」을 비롯한 9개 항목이 그것이다. 이어서 20개 항목에 걸쳐 신분제 개혁을 뒷받침하는 관제의 개혁을 서술하고 있다.

본론의 마지막은 이용후생의 길, 즉 행정·재정 제도의 제반 개혁과제, 농공상업과 그 종사자들에 대한 여러 가지 시책 등을 논한 40개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론에서는 저자의 개혁안이 천리와 인정에 바탕을 둔 실사(實事)와 후생(厚生)의 방안이며, 비록 현실적이진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지향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우서』는 당시 소론의 영수였던 이종성·조현명·박문수 등도 영조에게 읽어볼 것을 권할 정도였고,『우서』를 읽어본 영조가 우활하여 시행할 수 없는 것이 많다고 평했을 만큼 조선 사회의 근본적인 병폐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그 개혁을 모색한 책이었다. 이는 그 어떤 논저보다 당시의 시대상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나아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참신하고도 전진적인 개혁안을 총괄적으로 체계 있게 제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전통 성리학의 기본 이념에 머무르지 않고 18세기 이후의 역사 발전 방향에 걸맞은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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