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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리 요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639
한자 鳳凰里窯址
영어의미역 Kiln Site in Jungwon Bonghwang-ri
이칭/별칭 봉황리 백자가마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산 47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길경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도요지|백자가마터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 산 47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있는 조선시대 백자가마터.

[개설]

고려시대의 가마는 자기를 굽는다는 점에서 토기가마와는 격을 달리하며, 구조적인 면에서 훨씬 진보하였다. 이때의 가마는 중국의 자기가마인 용요 계통과 흡사한 세장방형의 대형 가마로 발전하였다.

통일신라시대까지도 토기가마는 길이가 불과 10m 미만이었으나, 초기 청자를 생산했던 소위 해물리굽 청자가마의 경우, 용인 서리유적에서 발굴된 것은 길이가 약 40m로 추정된다. 가마벽은 반듯한 세장방형으로 벽돌을 쌓아 만들어졌다. 또한 양질의 자기를 굽기 위해 갑발을 만들어 쓸 정도로 요업 기술이 발전하였다. 중기와 후기의 청자를 굽던 가마 중에는 길이가 80m를 넘는 것들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가마는 청자가마의 기본 구조를 계승하면서 발전하였다.

[위치]

가흥에서 앙성 방면으로 가는 국도 38호선에서 가흥리 새터마을 장미산 기슭을 돌아가면 하구암리로 넘어가는 도로가 있다. 이 길로 안골을 거쳐 2.5㎞ 정도 가면 남한강 지류인 한포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곳이 나온다. 봉황리 요지는 이곳 굽이를 이루는 오른쪽 야산에 위치한다.

[출토유물]

백자는 회백이나 청백의 유조를 띠고 있으며, 모래받침흔이 관찰된다. 기형은 대접이 대부분이며, 제기형 접시 등도 수습된다. 조선시대 이른 시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백자편이 산재해 있으며, 도지미와 불탄 흙 등도 눈에 띈다.

[현황]

봉황리는 마을 주민들이 주변을 사기막으로 부르고 있어 대규모의 가마터가 있을 것으로 주목되었다. 그러나 현재 이곳은 일부가 밭으로 개간되고 주변 지형이 크게 변형되어 밭둑과 야산의 경사진 곳에서 자기편과 불탄 흙이 일부 관찰될 뿐이다.

[의의와 평가]

지방의 백자가마는 필요로 하는 지역에 주변 요건에 맞게 조성되어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봉황리 요지도 지방 가마의 전형적인 형태로 해석되나, 이미 상당 부분 파괴되고 변형되어 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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