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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658
한자 丹月洞古墓群
영어의미역 Ancient Tombs in Danwol-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길경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덤|고묘군
양식 돌덧널무덤|토광묘|화장묘
건립시기/일시 고려시대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소유자 천주교 청주교구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고려시대 고묘군.

[개설]

고분이란 고총고분의 준말로 ‘큰 봉분을 가진 오래된 무덤’이라는 뜻이다. 삼국시대 초기 왕들이 권위의 상징으로 무덤을 대형으로 조성한 것을 일컬어 고분이라 했는데, 광의적으로 통일신라 이전의 무덤을 총칭한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무덤은 고고학적 개념에서 고분이라고 분류하기 어려워 고려시대 이후의 무덤은 고분과 구분 ‘고묘’라고 하여 서술한다.

[위치]

단월동 고묘군의 위치는 천주교 교단에서 공원 묘역으로 조성해 온 곳으로, 충주 시내에서 수안보 방향으로 국도 3호선을 따라 3㎞쯤 가면 싸리고개를 지나 오른쪽으로 천주교공원묘역이 나온다.

[변천]

단월동 고묘군은 원래 공동 묘지가 있던 곳이었으나 일부는 과수원 등으로 개간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부터 천주교 청주교구에서 이곳을 구입, 충주 지역 가톨릭 신자들을 위하여 공원 묘역으로 조성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단월동 고묘군은 묘역 상단부에서부터 조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단을 이루어 묘역을 조성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이에 단월동 고묘군에 대한 발굴 조사가 충주박물관 팀에 의해 1991년 긴급히 이루어졌고, 1995년 2차로 추가 발굴이 이루어졌다.

[형태]

단월동 고묘군의 봉분들은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표토를 제거하고 토층을 확인하여 무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덤은 돌덧널무덤과 토광묘, 화장묘, 회곽묘가 각각 확인되었다. 제1차 발굴 조사에서는 고려시대 돌덧널무덤 11기, 토광묘 6기, 회곽묘 2기 등 모두 19기의 고려 묘가 조사되었다. 제2차 조사는 제1차 조사 지역의 서쪽 남향한 능선에서 이루어졌는데, 조사 결과 돌덧널무덤 9기, 토광묘 1기, 화장묘 1기, 회곽묘 7기 등 모두 18기가 확인되었다.

[금석문]

돌덧널이나 구덩이 등의 고묘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묘주를 확인할 수 있는 금석문 자료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제1차 발굴 조사 때 석곽 2호, 7호, 9호와 제2차 발굴 때 석곽 3호, 4호에서 고려시대 동전이 수습되었다. ‘경우원보(1034~1037)’, ‘원풍통보(1078~1085)’, ‘개원통보(998~1009)’, ‘정융원보(1156~1161)’, ‘순화□보’ 등 동전에 적힌 글씨가 유일한 금석문 자료이다.

[현황]

제1차 발굴 조사 지역은 천주교 공원 묘역의 주차장 부지로 사용하던 곳의 북쪽 하단의 계곡부에 해당하는 곳이었고, 제2차 조사 지역은 제1차 조사 지역의 서쪽 남향한 능선부로 낙엽송이 식재되어 있었다. 현재는 공원 묘역이 확대 정비되어 변경이 생겼는데, 조사 발굴한 곳은 800~900번대 묘역에 해당된다.

[의의와 평가]

고려시대 고묘에 초점을 맞추어 학술적으로 조사한 중원 지역의 첫 번째 유적이다. 토광묘와 돌덧널무덤이 공존하는 모습에서 돌덧널무덤이 조성된 1~2세기 후에 토광묘가 조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회곽묘에서 정융원보를 확인하여 고려시대부터 이미 회곽묘가 조성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 유골을 특별히 만든 토기에 넣은 화장묘도 돌덧널이나 구덩이와 더불어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유적이라 주목이 된다. 출토 유물도 고려청자에서부터 토기, 철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매납 행위가 있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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