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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2570
한자 安東權氏
영어의미역 Andong Gwon Clan
이칭/별칭 능바우권씨,옻갓권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칠금동|대소원면 검단리|소태면 복탄리
집필자 최일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칠금동|이류면 검단리|소태면 복탄리
집성촌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
입향시기/연도 1460년대
성씨시조 권행
입향시조 권천

[정의]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천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연원]

안동권씨 시조 권행(權幸)은 신라 말 고창(현 안동)의 별장(別將)으로 있다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웠다. 권행의 성씨는 본래 김씨였으나 삼한벽상공신에 오르고 태조 왕건으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은 이후 후손들이 권행을 시조로 하고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안동권씨는 고려시대에 문과 급제자 8명을 배출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 크게 번성하여 왕비 1명, 문과 급제자 338명, 무과 급제자 6명, 재상 8명, 공신 18명, 대제학 4명, 청백리 1명을 배출하였다.

충주에 입향한 안동권씨는 의정부찬성사를 지낸 복성군 권언(權躽), 어모장군을 지낸 권평(權平), 중추부사를 지낸 권형(權亨), 사복시정을 지낸 권해(權海), 문천군수를 지낸 권호(權灝), 좌의정을 역임한 길창군 권람(權擥), 용양위부호군을 지낸 권응(權應), 강릉부사를 지낸 권엽(權曗), 승문원판교를 지낸 권윤(權磮), 익산군수를 지낸 권혁(權奕), 사간원헌납을 지낸 권지(權贄), 시인 권태응(權泰應) 등을 배출하였다.

[입향경위]

길창부원군 권근(權近)이 조선 개국 전까지 충주에 우거했었고, 권근이 별세한 후 묘를 당시 충주 지역(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쓰면서 충주 입향의 계기가 되었다. 충주의 안동권씨 입향조는 권근의 첫째 아들 권천(權踐)이다. 권천이 일찍 세상을 뜨자 권천의 처 단양우씨가 가족을 데리고 친정이 있는 충주로 이주해 살게 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권천의 후손들은 현 칠금동금릉동에, 권근의 둘째 아들 권제의 후손들은 소태면 복탄리에 정착하였다. 또한 권근의 넷째 아들 권준(權蹲)의 5세손 권옹(權雍)의 후손들이 소태면 야동리에, 권근의 셋째 아들 권규(權跬)의 9세손 권엽의 후손들이 대소원면 검단리에서 세거하고 있다.

[현황]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0년 기준 충주시에 거주하는 안동권씨는 1,423가구, 4,450명으로 조사되었다. 2008년 현재 안동권씨 칠금동 집성촌에 20여 가구가 세거하고 있고, 소태면 복탄리에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또한 대소원면 검단리에는 7가구, 소태면 야동리 10여 가구가 살고 있고, 그 밖에 충주시 전역에 걸쳐 살고 있다.

[관련유적]

양정공 권언(權躽) 사우가 충주시 금릉동 능바우에 있고, 권천 묘는 금가면 유송리에, 권엽의 묘는 대소원면 검단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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