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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3283
한자 柳永吉墓
영어의미역 Tomb of Yu Yeonggil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병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합장묘
양식 봉토분
건립시기/일시 조선 중기
관련인물 유영길
높이 170㎝
지름 470㎝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
소유자 전주유씨 월봉공파 종회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세성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유영길 부부의 합장묘.

[개설]

유영길(柳永吉)[1538~1601]은 1559년(명종 14) 별시문과에 장원 급제한 이후 부수찬, 정언, 병조좌랑, 전적, 헌납 등을 거쳐 1565년 평안도도사를 역임하였다. 1589년(선조 22) 강원도관찰사, 승문원제조를 거쳐 1592년 임진왜란 때 강원도관찰사를 지내면서 조방장 원호(元豪)가 여주 벽사(甓寺)에서 왜군의 도하를 막고 있는 와중에 원호를 호출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

이듬해 도총관, 한성부우윤을 거치고 진휼사가 되었으나 언관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호군, 연안부사가 되었고, 2년 뒤 병조참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600년 예조참판으로 치사하였다. 자는 덕순(德純)이고, 호는 월봉(月蓬)이다. 2001년 전주유씨 종회에서 간행한 『월봉유선생문집(月蓬柳先生文集)』의 관직명을 보면 비문과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어 의아하다.

즉 ‘증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춘추관성균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세자좌빈객 오위도총부도총관 행가선대부 예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世子左賓客五衛都摠府都摠管行嘉善大夫禮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이라 하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위치]

국도 3호선을 타고 남쪽 살미면 방향으로 가다가 자연가든 앞에서 좌회전하여 세성리로 진입한다. 세성마을을 관통하여 마을 끄트머리쯤 왼쪽에 1993년에 세운 유영길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다리를 건너면서 다시 좌회전하고 마을회관 앞을 거쳐 시멘트 포장을 따라 계속 직진한다. 약 1㎞ 정도 가면 충주시 보호수 8호인 느티나무가 나타나는데, 인삼밭을 끼고 산을 약 500m 정도 오르면 묘가 위치한다. 평상시에 안내가 없으면 오르기 어렵다.

[변천]

유영길 묘는 일제강점기 때 경기도 양주군 줄곡에서 이장하였는데, 수로(水路) 편으로 이동 중 충주 탄금대 합수 지점에서 선체가 파손되어 유영길의 비석 및 동자상(童子像) 등이 물에 빠졌다. 오랫동안 묘비도 없이 지내다가 1986년 2월 전주유씨 월봉공파(月蓬公派) 종회에서 묘비를 건립하였다.

[형태]

팔각의 봉토분으로 약 40여 년 전에 묘테석을 둘렀다고 한다. 묘테석은 79×29.5㎝의 판석 6장을 1면으로 하고, 위에 186×15㎝의 대석을 올렸다. 묘 둘레는 약 14m 정도이고, 지름은 470㎝, 높이는 170㎝이다. 8각형의 봉토분으로 조성하면서 용미는 없앴다고 한다.

이장 때 가져온 상석은 대리석으로 138.5×87×24㎝의 규모이고, 향로석은 25.5×24.5×46㎝이며, 문인상은 높이 166㎝, 너비 48㎝로 넉넉한 모습이다. 묘갈은 이장 중에 분실하여 1986년에 다시 건립하였는데, 비좌 이수의 형태로 비신은 63.5×30.5×172㎝, 이수는 92×69×76.5㎝, 대좌는 95.5×65×16㎝의 규모로 재료는 화강암과 오석이다.

[금석문]

1986년 세워진 묘갈의 비제는 관직명을 오른쪽에 8×8㎝ 크기의 해서체로 썼으며, 묘 주인공의 이름은 10×10㎝ 정도의 크기로 음기하여 글자 크기에 변화를 주었다. 비문에는 ‘증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경연 의금부춘추관성균관지사 홍문관예문관대제학 월봉전주유공영길묘 배정부인 예천권씨부좌(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知事弘文館藝文館大提學月蓬全州柳公永吉墓配貞夫人醴泉權氏祔左)’라 되어 있다. 본문의 글씨는 2.5×2.5㎝의 크기로, 유영길의 활동과 자손에 대하여 정리하여 음기하였다. 성균관 전학(典學) 김용숙(金容肅)이 찬하였다.

[현황]

유영길 묘는 약 33,058m²의 묘역 안 중간 정도에 자리하였다. 묘역의 윗부분에는 유영길의 아들인 유항(柳恒) 묘가 자리하고 있다. 유항 묘에는 174㎝의 문인석 한 쌍과 110㎝ 정도의 동자상, 비좌 원수 형태의 58×17×145㎝ 대리석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역시 8각형의 봉토분이다.

유항의 묘비에는 대리석으로, ‘증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의금부춘추관성균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세자좌빈객 오위도총부도총관 행 가의대부 한성부좌윤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유공항지묘 정부인 광주안씨부좌(贈資憲大夫吏曹判書兼知經筵義禁府春秋館成均館事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世子左賓客五衛都摠府都摠管行嘉義大夫漢城府左尹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柳公恒之墓貞夫人廣州安氏祔左)’라 음기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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