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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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陳瓛 |
영어음역 | Jin Hwan |
이칭/별칭 | 진기용(陳錤用)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서양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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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
성별 | 남 |
생년 | 1913년 |
몰년 | 1951년 |
본관 | 여양 |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서양화가.
[개설]
본관은 여양(驪陽)이고, 본명은 진기용(陳錤用)이다.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진우곤(陳宇坤)의 1남 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진환(陳瓛)은 무장공립보통학교와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보성전문학교 상과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한 뒤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일본미술학교 3학년 때인 1936년 동경에서 열린 제1신자연합회전에 「설청(雪晴)」 외 1점을 출품하여 장려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서독 베를린에서 열린 제11회 국제올림픽 예술경기전에서 「군상(群像)」을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이후 일본 도쿄[東京]에서 독립미술전·조선신미술가협회전·재동경미술협회전 등에 참가하고 1940년 동경미술공예학원 수료와 동시에 강사로 발탁되었다. 1941년에는 동경에서 서양화를 공부하는 조선 유학생들 중 김학준(金學俊)·이중섭(李仲燮)·최재덕(崔載德) 등 유망한 학우들과 함께 조선신미술협회를 결성하고 창립전을 가져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1943년 후반에 귀국한 뒤 1945년 8·15광복 후 조선미술건설본부 회원이 되고, 아버지가 설립한 무장중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서울의 홍익대학교 양화과 교수로 활동하였다. 1951년 1·4후퇴 때 고향 마을에서 유탄에 맞아 사망했다. 이중섭 등 당시 민족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소를 즐겨 그렸으며, 황색 계열의 색채를 많이 사용, 화면에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직선적이고 날카로운 윤곽선으로 화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으나, 중간 색조로 그것을 부드럽게 완화시켜 준 것이 또한 그의 그림이 지닌 특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