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9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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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濟弼 |
영어음역 | Yu Jepil |
이칭/별칭 | 호일(浩一),성곡(星谷)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독립운동가|유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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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
성별 | 남 |
생년 | 1880년 3월 14일 |
몰년 | 1961년 |
대표경력 | 고창향교 전교|고창향교 유도회장 |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
[개설]
자는 호일(浩一), 호는 성곡(星谷)이다. 1880년(고종 17) 3월 1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상성마을에서 유명석(柳明錫)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유제필(柳濟弼)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1922년 고창향교에 친일 교육 도장이 들어서자 앞장서서 반대하였다. 또한 일제가 서울 성균관에 있던 계성사(啓聖祠)와 동서무(東西廡)를 훼철하려 하자 전국 유림 대표로 나아가 이를 철회시켰다. 이후 성균관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1926년 4월 순종이 승하하자 유림 대표로 국장에 참여했다가 6·10만세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0년과 1941년 고창 산소동의 학산재(學山齋) 도유사(都有司)로 학산재의 재실을 중건했고, 벽산사(碧山祠) 도유사도 역임하였다. 1943년 대동아전쟁 말기에 친일에 앞장 선 면서기와 공출 반대 문제로 맞섰다가 수감되기도 하였다. 1945년 8월 광복을 맞아 고창향교 뒷산인 성산에 묻혀 있던 일본군 시신 12구를 파내어 성역을 정화하였다. 1947년 1월 고창향교의 초대 전교(典校)와 유도회장에 재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