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1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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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院湖里院湖 -祭 |
영어공식명칭 | Wonho Religious Ritual for the Jimdae in Wonho-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원호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태 |
의례 장소 | 짐대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원호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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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속 의례|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2월 초하루 |
신당/신체 | 짐대[솟대]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원호마을에서 음력 2월 초하루에 마을의 안녕과 액운 방지를 목적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 원호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짐대[솟대]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짐대는 장승이나 입석처럼 마을을 수호하고 액운을 방지하는 신앙물로, 긴 장대 위에 오리 모양의 나무를 깎아 올려놓은 것이다. 원호마을은 풍수지리상 ‘배 형국’이라서 마을을 안정시키기 위해 돛대에 해당하는 짐대를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원호리 원호 짐대제의 연원은 알 수 없으나 마을공동체 의례로 오랜 기간 지속해 온 민속이다.
원래 원호마을은 조선시대 고을 수령이 유숙하던 터가 있던 곳으로, 이곳의 풍취와 국사봉의 지세가 좋아 수령이 눌러 앉고 싶은 곳이라 하여 ‘눌헌’으로 불려 왔다. 1789년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산일면 원호리라는 지명이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큰 마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호마을에는 신앙 상징물로 짐대[솟대]와 더불어 팽나무 두 그루와 짐대 돌[입석] 두 기, 장성[대장군이라 부르던 장승]이 있었으나 현재는 짐대만 남아 있다.
짐대를 세우게 된 연원과 관련하여 유래가 전한다. 원호마을은 풍수지리상 ‘배 형국’이라서 마을이 안정되지 못하고 큰 인물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마을을 지나가면서 “마을이 배 형국이니 돛대를 세워 놓으면 마을에 좋은 일이 많을 뿐만 아니라 중흥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돛대를 상징하는 짐대를 만들어 세우자 그다음부터는 마을이 평안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연원으로 매년 짐대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짐대제의 거행 일시는 원래는 정월대보름이었다가 언제부터인가 정월 그믐으로 변경되었다가 다시 2월 초하루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원호마을에서는 짐대 앞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다. 짐대는 마을 논 가운데 한 기가 세워져 있다. 짐대는 긴 장대 위에 오리 모양의 나무를 깎아 부착한 형태로, 장대는 5m 정도다. 나무로 만든 오리는 27~29㎝ 정도로 입에 가느다란 대나무를 물고 있다. 짐대의 기단부는 시멘트 단과 연결되어 있고, 시멘트 단에 제기(祭器)를 보관해 두었다. 과거에는 장대를 나무로 만들어 썩을 때마다 새로 만들었는데, 1989년 마을 회의를 통해 반영구적인 철봉으로 교체하였다.
[절차]
원호리 원호 짐대제는 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두 명의 제관을 선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과거에는 매년 생기복덕[길일]을 고려하여 제관을 선정하였으나 근래에는 거의 같은 사람이 제관을 맡고 있다. 제관을 선정하면 짐대와 제관의 집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제관은 선정된 날부터 짐대터를 청소하고, 제를 지내기 사흘 전부터는 찬물로 목욕을 하며 근신한다. 개고기를 비롯한 육류를 먹지 않고 출산이나 초상이 있는 곳을 가지 않으며 사람 만나는 것도 꺼린다.
제물은 이장이 제사 전날 인근 시장에서 사고 조리까지 담당한다. 제물을 사는 데에 사용되는 비용의 경우 과거에는 주민들로부터 거두었는데 지금은 마을 기금으로 충당한다. 1993년의 제물 구매 내용을 소개하면 해물 18,500원, 과실 12,000원, 향촉 1,600원, 창호지 1,000원, 채소 4,000원, 미역 1,000원, 석화[굴] 2,000원, 건전지 1,700원, 술 2,000원, 두부 500원, 생강 500원, 여비 1,000원, 달걀 1,000원 등이다.
제사 당일이 되면 저녁 여덟 시 무렵 제관과 이장이 제물을 지게에 지고 제장으로 이동한다. 제물은 짐대 바로 밑의 시멘트 단에 차려 놓는데, 메·탕·촛대와 촛불은 반드시 일곱 개씩 놓는다. 7이 좋은 숫자라는 의미에서 예부터 전하여 온 관행이다. 제주(祭酒)는 과거에는 집에서 빚어 올렸으나 지금은 구매하여서 사용한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지내며, 분향·강신 후 재배와 독축으로 끝낸다. 독축 후 축문은 바로 태우며 소지는 올리지 않는다.
[축문]
1993년에 사용된 축문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維)/ 세차○○2월○○삭초1일(歲次○○2月○○朔初1日)/ 감소고우 유학○○○(敢昭告于 幼學○○○)/ 후토지지신금위(后土之地神今爲)/ 천지소생 지리소양 인무(天地所生 地理所養 人無)/ 처소금장 영건택수 삼간(處所今將 營建宅水 三間)/ 서방금신 복축(西方今神 伏祝)/ 자손왕성 오곡풍부 우마번성(子孫旺盛 五穀豊富 牛馬繁盛)/ 신휴감이 주찬경신 존헌(神休敢以 酒饌敬伸 尊獻)/ 상향(尙饗).”
[부대 행사]
제사 다음 날인 음력 2월 2일에는 주민들이 이장의 집으로 찾아와 함께 제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제물 비용을 결산하고 마을 일을 의논한다.
[현황]
2018년 현재 원호마을은 여전히 매년 2월 초하루에 짐대제를 지낸다. 제사 장소인 짐대 앞의 석상을 5~6년 전 새롭게 제작하여 그곳에 상을 차리고 제를 지낸다. 해남 지역에서 마을 제사를 지낼 때에 군고[농악]를 치는 게 일반적이지만, 원호마을은 마을 인구의 축소와 노령화로 오래전에 군고의 전통이 끊겨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