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567 |
---|---|
한자 | 羅級 |
영어음역 | Na Geup |
이칭/별칭 | 자승(子升),후곡(後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창현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자승(子升), 호는 후곡(後谷). 증조부는 창릉참봉 나세걸(羅世傑), 할아버지는 성균관전적 나익(羅瀷), 아버지는 성균관학유 나윤침(羅允忱)이다.
[활동사항]
나급은 1576년(선조 9) 생원시에 합격한 후 사직참봉에 제수되었다가 1585년에 식년문과에 갑과 3등으로 급제하여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에 제수되었다. 그후 한성부참군, 병조좌랑, 성균관전적을 거쳤다. 임진왜란 당시 한산군수, 공주목사로 재임하면서 난중의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였다. 1596년 제용감정으로 재임 중 왜군과의 강화 관계로 부산에 파견되었던 명나라의 유격(遊擊) 진운홍(陳雲鴻)의 접반관(接伴官)으로 차출되어 적진을 왕래하였다.
이듬해 사헌부지평, 사헌부장령, 시강원문학 등을 거쳐 김명원(金命元)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세자시강원보덕에 임명되었다. 1600년 평산부사로 나갔다가 관하 서리의 죄를 심하게 다스린 것이 남형(濫刑)으로 고발되어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나급은 성품이 강직하고 효성과 우애심이 깊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나봉산(羅峰山) 아래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정구(李廷龜)가 신도비문을 찬하고, 박태유(朴泰維)가 글씨를 썼다. 또 김상헌(金尙憲)이 묘지를 쓰고, 송시열(宋時烈)이 묘갈명을 찬하고, 김수항(金壽恒)이 글씨를 썼다. 임진왜란 때의 공로가 인정되어 도승지에 추증되었고, 뒤에 아들 나만갑(羅萬甲)의 공훈에 의하여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