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651 |
---|---|
한자 | 李孟休 |
영어음역 | Yi Menghyu |
이칭/별칭 | 순수(醇叟),두산(杜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명우 |
[정의]
조선 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순수(醇叟), 호는 두산(杜山). 아버지는 실학자 이익(李瀷)이고, 어머니는 사천목씨로 진사 목천건(睦天建)의 딸이다. 외아들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이맹휴(李孟休)[1713~1751]는 용모가 빼어나고 말소리가 우렁찼으며, 한 번 보면 모르는 것이 없어 다섯 살 때 육십갑자와 구귀법(九歸法)을 모두 외었다고 한다. 관직에 오를 때까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예학(禮學)에 관한 책을 탐독하여 실학과 예설에 밝았다. 1735년(영조 11) 진사가 되었고, 1742년(영조 18)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지만 관직 생활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1706년(숙종 32) 당시 장희빈(張禧嬪)을 두둔하고 세자(경종)를 보호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렸다가 죽음을 당한 이잠(李潛)의 조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료 사이에서 등용을 기피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조는 이맹휴를 특명으로 한성부주부에 임명하였고, 거듭되는 사간원의 탄핵에도 “비와 이슬이 내릴 때에도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는데, 임금이 사람을 임용하는 데 어찌 그 사람에게 구애받겠는가?”라면서 듣지 않았다. 1745년(영조 21) 전라도 만경현령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오랜 질병으로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 후기 안산 지역에서 문학·예술 활동을 벌인 안산15학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저술 및 작품]
1744년(영조 20) 예조정랑으로 있으면서 그동안 산만하게 뒤섞여 전하던 예조의 등록(謄錄)을 분류·정리하여 『춘관지(春官志)』를 편찬하였다. 『춘관지』는 이맹휴의 조카인 이가환(李家煥)에 의해 1781년(정조 5) 증보되어 3권 3책으로 완성되었다. 그밖에 『창대원류(蒼臺源流)』, 『접왜역년고(接倭歷年攷)』, 『거관일록(居官日錄)』, 『거현일록(居縣日錄)』, 『예기설(禮記說)』 등을 저술하였으나 전하지 않는다.
[묘소]
묘소는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었으나,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매산묘원으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