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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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浚 |
영어음역 | Choe Jun |
이칭/별칭 | 덕원(德遠),고산(孤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계형 |
[정의]
조선 전기 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덕원(德遠), 호는 고산(孤山). 할아버지는 최혼(崔渾), 아버지는 부제학 최홍도(崔弘渡), 어머니는 영일정씨(迎日鄭氏)로 정유침(鄭惟沈)의 딸로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누이, 처는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숭조(尹崇祖)의 딸이다. 자호(自號)인 고산은 일시 머물러 살았던 황해도 해주에 있는 명산의 이름이다. 외숙인 송강 정철이 해주로 귀양을 가게 되자 어머니를 모시고 해주까지 따라가 살았던 적이 있는데 정철의 문집에 이에 대한 시말(始末)이 적혀 있다.
[활동사항]
최준은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서 태어났으며 외숙인 정철에게서 수학했다. 1570년(선조 3) 21세 때에 식년시에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다. 그 뒤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를 거쳐 호조조랑, 호조정랑, 공조좌랑, 공조정랑, 형조좌랑, 형조정랑,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으며 외직으로 신계현령(新溪縣令)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공신에 책록되었고 1602(선조 35) 진위현령(振威縣令), 장례원판결사에까지 올랐다.
1612년(광해군 4)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다음해에 정인홍(鄭仁弘) 등이 주도한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이후 향리로 돌아와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서경(西坰) 유경근(柳坰根), 일송(一松) 심희수(沈熹壽) 등과 교유하며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하였다. 임광과 이정귀의 작은아들 이소한(李昭漢)을 문하에 두고 가르쳤다.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최준이 죽자 안산 사람 북저(北渚) 김류(金瑬), 이시언(李時彦), 심희수, 이정구, 김현성, 윤기헌, 이명한(李明漢) 등이 명문의 뇌사(誄詞)를 지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신응조(申應朝)가 묘갈을 찬하고, 영조 당시 노론의 대표적인 학자였던 홍직필(洪直弼)이 유허비문을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