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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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時驛 |
영어공식명칭 | Jangsi Station |
이칭/별칭 | 장세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역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범 |
[정의]
조선시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역리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개설]
장시역(長時驛)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역리에 있던 역이다. 역리에는 역말[역촌], 싸리미, 서빠탱이 등 3개의 마을이 있는데, 역말은 조선시대 장시역이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마을 이름을 ‘역말’이라고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장세역(長世驛)’이라고 불렀다. 시흥도(時興道)에 소속되어 충청우도(忠淸右道) 서부 해안지역과 내륙을 연결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역은 공문서 전달, 출장자 지원, 죄인 압송, 통행인 규찰 등을 목적으로 국가에서 만든 교통 통신 기관이다. 장시역은 예산과 평택을 연결하는 시흥도에 소속되어 시흥찰방(時興察訪)의 관리 아래 있었다.
[관련 기록]
장시역과 관련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신정아주지(新定牙州誌)』, 『여도비지(與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용]
『세종실록지리지』 「아산현조(牙山縣條)」에 "역이 하나이자, 장시이다. 옛날에는 장세(長世)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아산현조」에 "장시역은 본현 북쪽 2리[약 0.8㎞] 지점에 있다."라고 각각 기록되어 있다. 『신정아주지』에 "장시역은 현 동북 7리[약 2.5㎞]에 있다. 금정도(金井道)에 속한다. 타는 말이 10마리, 짐 싣는 말이 4마리, 역리(驛吏)가 31명, 역노(驛奴)가 21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도비지』「아산현 역도조(驛道條)」에 "장시역은 관아의 북쪽 2리에 있다.", 『대동지지』에 "장시역은 북쪽 2리에 있다."라고 각각 기록되었다.
[변천]
고려시대 충청주도(忠淸州道)에 속하는 장세역, 이흥역(理興驛), 일흥역(日興驛)을 조선 전기에 개편하여 시흥도로 만들고 장시역을 소속시켰다. 시흥도에는 일흥역[현재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 창덕역(昌德驛)[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창암리], 시흥역[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 장시역, 화천역(花川驛)[현재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추팔리]이 속해 있었고, 역승(驛丞)이 파견되어 속역(屬驛)을 관리하였다. 이후 17세기경 시흥도가 금정도에 통합되면서 장시역도 금정도 소속 역이 되어 금정찰방(金井察訪)의 관리를 받았다. 1896년(고종 33) 역원제가 폐지되자 없어졌다.
[의의와 평가]
장시역은 충청남도 아산시, 충청남도 예산군, 경기도 평택시를 연결하는 역이었다. 특히 평택의 화천역에서는 안성을 거쳐 한양에 이르는 대로(大路)인 양재도(良才道)로 진출할 수 있어 장시역은 충청도 서부 해안지역과 중앙을 연결하는 역으로 기능하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