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0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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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姜履箕旌閭 |
영어공식명칭 | Monument for Filial Son Gang I-gi[Hyoja Gang I-gi Jeongnyeo]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 산47-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여송은 |
건립 시기/일시 | 1859년(철종 10) - 효자 강이기 명정이 내려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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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효자 강이기 정려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 산 47-1 |
성격 | 정려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에 있는 효자 강이기의 조선 후기 정려.
[개설]
강이기(姜履箕)의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명(士明)이고, 효자 창암(窓巖) 강봉수(姜鳳壽)의 9대손이다. 어릴 때부터 효자라 칭찬이 자자했는데, 어느 날 부친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강이기는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백일 동안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렇게 기도하며 극진히 간호하였음에도 아버지가 위중한 지경이 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넣어드렸다. 그것이 효험이 있었던지 아버지가 잠시 회생하는 듯하여 약지와 중지도 베어 세 손가락의 피를 드렸지만, 끝내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강이기는 슬픔 속에 식사도 하지 않고 예를 다해 장례를 지른 후 옆에 움막을 짓고 뼈만 남을 정도로 수척해지면서도 3년을 하루같이 시묘를 하였다. 그 효행이 알려져 1859년(철종 10)에 효자 명정을 받고 판결사(判決事)의 직에 추증되었다.
[위치]
효자 강이기 정려는 아산시 인주면 도흥리에 있다. 지방도 624호선[현대로]의 도흥2리 섬말 입구에서 마을 쪽으로 약 100m 지점의 왼쪽 산자락에 정려가 있다. 열녀 전주이씨 정려와 나란히 서 있다.
[형태]
효자 강이기 정려의 정려각은 정면과 측면 각 1칸의 규모로, 자연석을 두른 기단 위에 둥근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사면의 벽은 모두 홍살이 설치되어 있다. 초익공 계통에 홑처마이며 맞배지붕을 올렸고, 양 측면에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정려각의 목재 부분은 모두 붉은 단청이 이루어져 있다. 정려 안의 중앙에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내용은 ‘효자 통정대부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강이기지려 철종기미삼월 명정(孝子 通政大夫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姜履箕之閭 哲宗己未三月 命旌)’이라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효자 강이기 정려는 아산시 배방읍 신흥리에 있는 효자 강봉수 정려, 송악면 동화리에 있는 효자 강인수 정려와 더불어 아산 지역에 세거했던 진주강씨 집안의 효행을 잘 보여 주는 의미 있는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