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101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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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信仰 |
영어공식명칭 | Village Worship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규태 |
[정의]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한 마을이 단위가 되어 행하던 신앙의 형태.
[개설]
마을신앙은 마을의 평화와 안녕,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 단위의 제의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산과 바다를 모두 접하고 있는 지역적 특성에 기반해 다양한 마을신앙이 있었다. 마을 단위의 동제 시행에 있어 산신제의 비율이 가장 높고, 이어 서낭제[성황제]의 비중이 높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기타 노신(路神)을 섬긴 흔적과 당신(堂神)을 모신 기록, 용왕제 및 미륵제에 대한 마을신앙 기록도 있다. 방축동의 산신제와 노신제, 용화동의 성황제, 송악면의 푸닥거리 등이 대표적인 마을신앙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신앙의 특징]
충청남도 아산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먼저 주신과 보조신에 대한 인식이 크게 구별되지 않았던 것이 특징이다. 이어 마을신앙의 절차와 형태도 다른 지역과 달리 여성이 주도한 동제(洞祭)가 확인된다. 아산시 선장면 돈포1리, 송악면 거산1리, 온양6동 장존동의 경우 여성들이 동제의 전면에 나섰다. 이와 함께 아산의 동제는 정성을 중시하고 금기와 정화에 대해 크게 괘념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보편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정화를 위해 금줄을 치거나 황토를 뿌리는 행위 등이 과하지 않았다. 더불어 제주(祭主), 제장(祭場)의 주재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무당인 경우가 많았다. 방축동 거문들과 희안마을, 권곡동 당고사 등에서는 신력을 높이고 영험함을 이끌어 내기 위해 용한 무당을 초청해 동제를 진행했다.
[신당/신체의 형태]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는 산신의 경우 각 마을에서 산신각에 처소를 마련해 제의를 가졌으며, 초사2통 사래마을에서는 산신각에 산신령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였다. 서낭당은 산신당과 달리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서낭이라는 나무로 자리를 잡았다. 노신은 잡귀잡신이나 재액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마을 어귀나 마을 앞을 지나는 길 위에 있다. 노신은 송악면 종곡리와 기산2통 거리미의 장승, 점량동의 정자나무, 희안마을의 바위와 같이 다양한 토템을 활용한 신으로 형상화되었다. 당신은 마을에 좌정하며 섬겨지게 된 이유가 각각 다른데, 일반적으로 당질을 세우고 이곳에 당신을 모신 경우가 많았다. 풍기2통에서는 신혼부부를 모시고 있고, 권곡1동의 건구렝이마을에서는 산신령과 처녀, 총각, 말을 탄 장수 등 4위의 신격(神格)을 모시고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수시로 용왕제를 지낸 것으로 나타나며, 음봉면 의식리에서는 미륵을 모신 것으로 전해진다.
[제의 시간 및 주관]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신격과 신앙의 형태에 따라 동제는 다양한 시기에 시행되었는데, 대부분 마을은 일 년에 한 번 동제를 지낸 것으로 보고된다. 물론 일부 마을은 정월에 동제를 모시고 단오나 칠석 등에 다시 동제를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지내는 시기도 대체로 정월에 몰려 있었다. 정초부터 정월대보름까지가 가장 많았고, 이월 초하루까지 대다수의 동제가 시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때 동제를 주관했던 사람을 제관(祭官)이라 하는데, 아산 각지에서는 제관을 주당 또는 주당 닿는 사람, 주당 닿은 사람 등으로 불렀다. 마을 어른[노인회]의 의중을 토대로 제관을 돕고 축문을 읽는 축관, 제의 뒷일을 돕는 유사(有司)를 선출해 제를 진행하였다.
[제의 절차]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 동제를 지내는 절차는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었으나, 전체적인 흐름은 대체로 동일했다. ‘정화-금기의 실천-제물 조리와 진설-제-소지’의 일반적인 절차를 거쳤다. 특히 ‘제’는 ‘분향-강신-초헌-독축-아헌-종헌-첨작-소지’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기록 및 현황]
충청남도 아산이 도시화, 현대화하면서 고유의 마을신앙은 거의 사라지고 있으며, 지역 축제나 행사 등에서 일부 동제를 재현하고 있다. 염치읍 염성리, 송악면 유곡리, 음봉면 동암리, 신창면 신달리 등에서 매년 날짜를 택일해 산신제를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산시지』 5권에는 음력 1월과 11월에 초사동과 방축동에서 진행되었던 노신제, 음력 정월 초 온 동네의 무병장수를 기원했던 방축동의 산신제와 용화동의 성황제에 대한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