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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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聚星齋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석동길 37[연곡리 35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개설]
취성재(聚星齋)는 부안 김씨(扶安金氏) 김광서(金光敍)를 제향하기 위한 재실이다. 김광서는 김구(金坵)[1211~1278]의 후예로 고려 말에 고부 군사(古阜郡事)를 지냈다. ‘취성재’라는 이름은 명종조의 문신 임억령(林億齡)이 부안 김씨가 살고 있는 현재의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를 찾았다가 “옹중에는 군자가 많고 김문(金門)에는 덕성(德星)이 모였다[甕井多君子 金門聚德星]”라고 칭찬한 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위치]
취성재는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석동산 남동쪽에 위치한다. 부안고등학교에서 지방도 제707호선을 타고 부안남초등학교 방향으로 800m 정도 내려가면 ‘유절암’ 표지석이 나온다. ‘유절암’ 표지석에서 좌측 길로 들어서 300m 정도 가다가 좌측 길로 꺾어 산자락 쪽으로 400m 정도 들어가면 유절암이 보인다. 취성재는 유절암에서 80m쯤 못 미쳐 우편 산 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300m 정도 들어가면 있다.
[변천]
취성재는 부안 김씨의 재실로 1819년(순조 19)에 김광서를 제향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후 화재로 소실되자 1826년(순조 26)에 중건하였다. 예전에는 취성재에 사방의 선비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강론하였다.
[형태]
재실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에 ‘취성재’ 편액이 걸려 있다. 3단의 석축 기단 위에 자연석의 주추를 놓고 그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운 주심포(柱心包) 양식이다. 재실 앞에는 문루인 2층 누각이 있다. 문루에는 1층 문 위에 ‘취성문’, 2층 누에 ‘취성루’ 편액이 걸려 있다. 보기 드문 형태로 1층은 정면 5칸에 측면 3칸이고, 2층은 정면 3칸에 측면 2칸이다.
취성재에서 동쪽으로 10m 떨어진 곳에 김억일 순효비(金億鎰純孝碑)가 있다. 김억일은 임진왜란 때 장성에 의병청을 설치하여 의병을 모았다. 1604년(선조 37)에 김억일이 61세로 죽자 순효비가 내려졌고,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이름을 올렸다. 서쪽에는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찬한 김직손(金直孫) 신도비가 있다. 김직손은 김광서의 증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과 정언, 한산 군수를 지냈다.
[현황]
소유자 및 관리자는 부안 김씨 종중이다. 취성재에 소장되어 있던 『지포집(止浦集)』 목판과 『문한공단권(文翰公丹券)』 목판, 도동서원 중수 상량문 현판 등은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기탁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