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3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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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동식물 |
유형 | 식물/보호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21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창기 |
최초 식재 시기/일시 | 1376년 -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식재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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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수 지정 일시 | 2006년 12월 29일 -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83호 지정 |
보호수 지정 일시 | 2019년 12월 2일 -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충청남도 기념물 제194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소재지 |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211-1 |
학명 | Ginkgo biloba |
생물학적 분류 | 식물계〉은행나무문〉은행나무강〉은행나무〉은행나무과 |
수령 | 약 760년 |
보호수 지정 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 홍산객사에 있는 은행나무.
[개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들어온 것으로 전하여진다. 문헌에 따르면 방화·방풍 기능을 하여 방화목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또한 공손수(公孫樹)라고 하여 조상들은 은행나무를 귀하게 여겨 불교 용품의 재료로 많이 사용하였다.
잎의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하여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한다. 열매가 살구[肉杏]와 비슷하고 은빛이 난다 하여 은행(銀杏)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9월 경부터 익기 시작하는 열매는 핵과(核果)로 구형이며, 황색의 종의는 몹시 거북한 악취가 나고 체액이 피부에 접촉하게 되면 심한 피부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함부로 베면 재앙을 받는다는 속설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에 있는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760년인 정자목이다.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고려 24대 임금 원종 대인 1260년경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 최영과 관련이 있다. 최영이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왜구를 크게 무찌른 홍산대첩이 부여군 홍산면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최영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을 기념하며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1979년 4월 1일 부여군의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이후 2006년 12월 29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8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12월 2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94호로 승격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남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형태]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높이 약 23m, 둘레 약 8.51m이다. 약 760년 된 수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높다.
[역사/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전하는 말로는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의 밑에 큰 구렁이가 살고 있어서 사람들이 신성시하였으며, 나라에 전쟁을 비롯한 재난이나 경사스런 일이 생기면 나무가 울기도 하고 밤에 불빛이 환하게 일어 알려 주었다고 한다. 또 마을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찾아가 기원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현재까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 나무로 보호하고 있으며,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에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나무 앞에서 제사를 올리는 등 당산나무 기능도 하고 있다.
또한 부여 홍산객사 은행나무는 홍산객사의 건립 시기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여 볼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홍산객사 및 주변 마을의 역사와 문화적 사실을 증명하는 살아 있는 나무로 역사적·문화적·경관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