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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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歡- |
이칭/별칭 | 천안 참외,성환 참외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특산물/특산물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열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생산되는 박과에 속하는 과실류.
[개설]
참외의 원산지는 본래 인도 지방으로 기원전에 이미 유럽과 아시아에 두루 퍼져 재배되어 왔다고 한다. 중국 문헌에 의하면 인도에서 유럽으로 다시 중국으로 중국에서 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졌고, 그 후 일본에까지 전해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조선 성종(成宗) 때에 경남 언양(彦陽) 지방에서 한겨울인데도 참외를 가꿔 임금에게 바쳐 올렸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재배 기술이 발달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그 전래의 기원이 대단히 오래된 것으로 짐작된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에서 재배하였던 참외 가운데서 가장 미각을 돋우었던 것은 성환(成歡) 참외로 1926년부터 1965년까지 그 이름을 떨쳤다. 성환 참외는 원래 일제의 침략 당시 성환 목장의 주인이던 일본인 카호시데쓰마[赤成鐵馬]가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재래종과 일본종을 교배시켜 개량한 것이라 한다. 이 참외의 껍질은 지구의(地球儀)의 날줄 모양으로 골이 져 있고 푸른색과 녹색, 적색들이 혼합된 바탕에 검은 점이 듬성듬성 물결모양을 이룬 얼룩이 있어 소위 개구리 등껍질과 흡사하다하여 일명 ‘개구리참외’로 불려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일본 왕에게 공급할 때는 개구리참외를 운반하기 위해 인천항에서 선적된 다른 물건을 제쳐 놓고라도 우선 일본으로 반출될 만큼 절찬(絶讚)을 받았다.
[제조(생산) 방법 및 특징]
성환 개구리참외는 참외의 절반을 가르면 붉은빛을 띠는 참외속이 특유의 향기를 풍기는데 그 은은한 풍미를 요즈음 흔한 소위 ‘나이론 참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크기는 일반참외의 두 배 정도로 큰 것은 3kg에 달하는 것도 있으며 특히 수분이 많아 시원하며 입에 넣으면 씹지 않아도 녹는 기분을 주고 독특한 향기가 있다. 그리고 표피가 매우 얇아서 운반할 때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현황(관련 사업 포함)]
토종 성환 참외가 오늘날 거의 자취를 감추고 은천(銀泉) 참외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때는 성환 개구리참외가 참외의 대명사처럼 대두되었지만 이제는 천안시 성환읍 매주리에서 3대째 가문의 전통처럼 가꾸어 오는 정관용(鄭寬容)에 의해서 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정관용에 의해 품종 보존된 개구리참외는 비닐하우스 시설 재배의 실시와 접목 이식 재배 기술이 개발되어 원형 그대로의 모양을 되찾아 현재 15호 정도의 농가에서 재배에 열중하고 있다. 국도 연변에 원두막과 가판대를 만들어 놓고 천안 특산물 ‘개구리참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정관용에 의하면 수익성도 문제지만 농사법이 까다롭다. 같은 토질에 연작을 하면 잘 자라지 않는 특유의 까다로운 성질이 있다. 또한, 포기당 15개 정도 달리는 수입종에 비해 5개 정도 밖에 달리지 않는 개구리참외는 껍질이 얇아 상하기 쉽다. 그래서 농가에서 재배를 기피하고 있어 보급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초창기인 1926년 개구리참외 작황을 보면 20여만 개 생산, 그 뒤는 점차 줄어 1933년경에는 15만 개 정도 수확되었으며 해방 후 개량종인 은천 참외가 나오면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0년경에 이르러 다시 일부나마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개구리참외 고장인 성환·직산 지역은 황사 토질(黃砂土質)이어서 재배에 적절한 곳이었다. 그러나 연작하면 결실이 좋지 않아 많은 수확을 거두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초창기 옛 맛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