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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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雲龍里軍丹-山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에서 매년 정월 초에 농사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운용리 군단이 산신제는 정월 초에 길일을 택하여 날짜를 정하되 통상 정월 초열흘날 이전으로 제삿날을 받는 것이 관례이다. 이를 위하여 섣달그믐이나 정초에 마을 임원과 원로들이 회합을 열어 부정이 없고 깨끗한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한다.
제관은 음식을 준비하는 공양주와 축관, 각 한 사람을 뽑는데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가려 제삿날에 일진이 가장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관은 산신제 닷새 전부터 치성을 드린다. 무엇보다 두문불출하며 대문 밖 출입을 자제하고 술·담배를 금한 채 부정한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한다. 또 화를 내거나 심지어 남들과 말을 해서도 안 된다. 비용은 집집이 나누어 내는 것으로 충당하고 제물은 쇠머리, 삼색과실, 떡, 술 등이다. 제물을 담당한 장꾼이 아침 일찍 시장에 나아가 물건을 사 오면 공양주의 집에서 준비한다.
[연원 및 변천]
운용리는 위례산성을 끼고 있는 마을이고, 군단이 마을은 백제 때 군대가 주둔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다. 위례산성 내에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전하는 말로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이 밤이면 용이 되어 이 우물로 들어가 부여 백마강에 가서 놀고 날이 밝으면 다시 우물로 나와서 왕 노릇을 하다가 처남의 꾐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이렇듯 운용리 군단이는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로서 일찍부터 산신에 대한 신앙이 굳건했던 마을로 추정된다. 산신제의 역사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예로부터 오랜 세월 산에 의지하며 살아온 이 마을의 입지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당/신체의 형태]
산제당은 블록으로 지은 단칸 슬레이트 지붕이다. 크기는 3~7㎡ 남짓한 작은 규모이다. 본래 초가였던 것을 20여 년 전[2012년 기준]에 중수하여 개축한 것이다. 당집에는 산신도나 위패는 없이 단지 주벽에 제물을 차려 놓을 제단이 마련되어 제기가 보관되어 있을 뿐이다.
[절차]
산신제가 임박하면 왼새끼를 꼬아 마을 입구와 산제당 주변에 금줄을 친다. 예전에는 금줄이 쳐지면 외지에서 일을 보러 마을로 들어온 사람은 제사가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산신제의 절차는 일반적인 유교식 제례 절차가 표준으로 적용된다.
마지막에 거행되는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흰 종이를 사르는 일]는 산신제의 가장 중요한 의례이다. 소지는 공양주의 소지를 먼저 올리고 나서 집집이 각 세대주와 남자들의 소지를 올려 준다. 이때 축관은 가가호호의 사정을 살펴서 고사덕담으로 그 집안의 대주(大主)가 건강하고 그 가정이 무사태평하기를 축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