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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2108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집필자 이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일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매년 정월 초하루에 새해를 맞아 행하는 세시 풍속.

[개설]

설날에는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이다. 이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하며 덕담을 나누는 풍습이 있다. 또한 이날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의 첫날을 맞아 새로운 몸가짐을 한다는 의미에서 새 옷을 즐겨 입는다. 이렇게 새로 장만한 옷이나 신발 따위를 설빔이라고 한다.

[연원 및 변천]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의 대표적인 명절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양절·동지 등을 9대 명절로 삼았고 조선 시대에는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로 삼았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설날은 이미 고려 시대 때부터 중요한 명절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정월의 원일(元日), 곧 설날에 이루어졌던 다양한 행사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서울 풍속에 이날 사당에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茶禮)라 하고 남녀 어린이들이 새 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 집안 어른을 찾아뵙는 것을 세배(歲拜), 설날 시절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 이때의 술을 세주(歲酒)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절차]

천안시에서 맞이하는 설날은 한 해의 첫 시작이므로 가장 먼저 조상을 위하는 차례로 시작한다. 차례는 보통 3~4대조까지 모신다. 차례를 모시기 전 설날 아침에는 대문을 열고 빨랫줄을 한쪽으로 거둔다. 혹 조상이 집안으로 들어오다가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배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차례를 마친 후에는 주변에 있는 조상의 묘소에 찾아가 성묘한다. 집에서 차례를 모셨기 때문에 따로 제물을 마련하지는 않는다.

설날 아침으로는 떡국을 끓여 상을 차린다. 떡국을 끓일 때에는 따로 메를 짓지는 않는다. 요즘에는 소고기를 넣은 떡국을 끓이지만, 소고기가 비쌌던 시절에는 닭 삶은 국물, 멸치 국물로 끓이거나 계란을 풀어 넣기도 하였다. 떡국과 함께 새 김치를 올린다.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동 1리 구억말에서는 주로 나박김치를 올렸다고 한다. 새 김치를 담는 이유는 차례상에는 묵은 김치를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조상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가리는 것이 많았다.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에서는 설날이 가까워지면 일주일 전쯤부터 부정한 것을 보지 않으려 하였고, 동네에 초상이 나더라도 혹시 부정이 들까 하여 문상도 가지 않고 근신하였다.

차례를 마친 후에는 부모를 비롯한 집안 어른에게 세배를 올리고 성묘를 다녀온 후에는 친지와 이웃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새해 인사를 한다. 새해 인사는 초사흗날 정도까지 다니는데, 형편상 새해 인사를 하지 못했다면 대보름 이전에만 찾아가면 큰 흉으로 여기지 않는다. 세배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떡국이나 술상을 내어 대접하였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린이라면 세뱃돈을 주거나 떡, 과일 등을 대접한다.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해정 1리 엄정말에서는 사위가 처가에 세배를 서둘러 가는 것을 일컬어 “처갓집에 초승에 세배를 가면 올겨[논]를 세 마지기 얻는다.”라고 했는데, 이는 다른 곳을 제쳐 두고 처가에 먼저 온 일에 대하여 장인과 장모가 기뻐하는 것을 빗댄 말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설날에는 문안비,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聽讖), 윷놀이, 널뛰기 등 많은 세시 풍속과 민속놀이가 행해졌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정초에는 남자든 여자든 아침 일찍 남의 집에 가지 않는 것이 예의였고, 특히 여자들은 설날에 세배하러 돌아다니지 않았다.

자식에게 수양부모를 삼아 준 일이 있다면 수양부모에게도 반드시 새해 인사를 드리도록 하였다. 또 마을에 탈상 이전의 상청(喪廳)을 모신 집이 있을 때는 잔을 붓고 인사를 한다. 탈상 이전이므로 산 사람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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