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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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梅里英陽南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훈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월매리에 있는 영양 남씨 송정공파 집성촌.
[개설]
월매리 영양남씨 집성촌은 월매리 월매마을에 있는 영양남씨 세거지이다. 영양남씨는 경상북도 영양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영양남씨 시조 김충(金忠)은 당나라 현종(玄宗) 때(685~762) 중국 여남(汝南)에서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경상북도 영덕의 죽도(竹島)에 표착하여 신라에 정착하였는데, 신라 경덕왕은 김충이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南氏) 성을 내렸다. 김충은 남씨 성을 받고 이름을 남민(南敏)으로 고쳤다.
청송의 영양남씨 입향조 운강(雲岡) 남계조(南繼曹)의 후손들은 송정공파(松亭公派)의 지파인 운강공파(雲岡公派)에 속한다. 운강공파는 종파 외에도 운강공의 손자 남세주(南世柱)의 거성파(巨城派), 운강공 차남 남수(南邃)의 월매파(月梅派), 3남 남관(南寬)의 용연파(龍淵派)와 대구광역시로 이거(移居)한 4남 남실(南實)의 입석파(立石派)의 네 소파로 나뉜다.
[명칭 유래]
월매리는 지형이 반달 형국으로 되었다 하여 월매(月梅)라 부른다.
[형성 및 변천]
청송군의 영양남씨 입향조는 운강 남계조로, 임진왜란을 피하여 영양에서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로 이거하였다. 그의 후손들이 월매리를 비롯한 현동면 부근에 기거하여 지금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운강공의 차남 남수가 월매리로 이거하여 영양남씨 운망공파의 소파인 월매파를 이루었다. 월매리의 영양남씨 가구수는 1992년에 20가구였으며 2017년 현재는 약 30가구로 그 수가 증가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거성리, 도평리, 개일리, 월매리를 합하여 영양남씨는 191가구였다.
[자연환경]
월매리는 청송팔경 중 하나인 월매계곡에 위치한 산촌으로, 북쪽으로는 개일리와 접하고 있으며 남쪽의 면봉산을 넘으면 포항시 죽장면이 있다. 월매마을의 서쪽과 북쪽에는 병보천에서 월매저수지로 흐르는 강이 갈라져 감싸는 형태를 이룬다.
[현황]
2017년 현재 월매리에는 66가구 정도가 살고 있으며, 그중 영양남씨는 30가구 정도이다. 마을이 번성하였던 시기에는 전체 70가구 정도였으며, 그중 영양남씨는 40가구였다. 영양남씨 월매파 문중에서는 월매마을 겸와재(謙窩齋)에서 매년 문중 제사를 지낸다. 겸와재는 입향조인 남수가 기거했던 곳으로, 침류헌(枕流軒) 또는 월매서당(月梅書堂)이라고도 불린다. 월매리에는 겸와재 외에도 영양남씨 청송 입향조 운강공의 현손인 매계(梅溪) 남지훈(南之薰)의 덕을 기리는 매계정(梅溪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