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1057
한자 靑松花池齋
영어공식명칭 Cheongsong-Hwajijae
이칭/별칭 영모재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청송로 2201-55[장전리 11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소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29년연표보기 - 청송 화지재 영모재라는 이름으로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27년~1729년 - 청송 화지재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7년 - 청송 화지재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6년 - 청송 화지재 묘도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12월 05일연표보기 - 청송 화지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3년 04월 08일연표보기 - 청송 화지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5호에서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7호로 승격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송 화지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7년연표보기 - 영모재에서 청송 화지재로 개칭
현 소재지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청송로 2201-55[장전리 115]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맞배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영양남씨 문중
관리자 영양남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재실.

[개설]

화지재(花池齋)영양남씨(英陽南氏) 입향조인 운강 남계조[1541~1621]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1629년에 건립된 재사이다. 「화지재중수기(花池齋重修記)」에 따르면, 남계조는 선조 연간 임진왜란 당시 형인 남윤조(南胤曹)가 의진에 참여하자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으로 이거하여 만년을 보냈다고 한다. 평소 근검절약과 어머니에 대한 효행으로 칭송을 받았다. 화지재는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7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

명당리 안덕파출소에서 안덕교를 지나 장전2리 방면으로 오다 보면 좌측 편 마을 안쪽에 화지재가 자리 잡고 있다. 화지재 위쪽 산자락에 남계조의 묘소가 있다.

[변천]

1629년(인조 7)에 후손들이 남계조를 기리기 위해 영모재(永慕齋)라는 이름으로 재사를 세웠다.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영모재가 훼손되자 1727년(영조 3)~1729년(영조 5)에 보수했으나, 다시 풍우(風雨)로 건물이 훼손되자 1937년 별소(別所)를 세우고 당시 지명인 화지동을 따서 화지재라 하였다. 이후 1966년 묘도비를 세우면서 화지재 현판을 새로 달았다. 1996년 12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5호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7호로 승격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화지재의 오른쪽에는 남계조의 묘도비각(墓道碑閣)이 있으며, 서쪽 근거리에는 선조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심은 청송 장전리 향나무[천연기념물 제313호]가 있다. 화지재의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으로 가구는 오량가(五樑架)이다. 전면에는 3칸 규모의 평대문이 배치되어 있으며, 좌측에는 ‘ㄱ’ 자형 주사(廚舍), 우측에는 3칸 규모의 동재(東齋)가 있다. 평면은 2칸 대청을 기준으로 좌측과 우측에 각각 온돌방을 1칸씩 연접시켰으며, 온돌방 상부에는 가적지붕[본채 옆 작은 지붕]을 얹었다.

[현황]

화지재는 2013년 4월 8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7호로 승격, 지정되어 보호 및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7세기 건축양식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나, 화지재는 지붕의 구성이 특이하여 지역을 대표하는 재사 건축으로 민속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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