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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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始蕃墓 |
영어의미역 | Grave of Gim Sib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완오리 가정마을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병구 |
성격 | 합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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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봉토분 |
건립시기/일시 | 1652년 |
관련인물 | 김시번 |
높이 | 170㎝ |
지름 | 700㎝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완오리 가정마을 |
소유자 | 김근영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완오리 가정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시번의 묘.
[개설]
김시번(金始蕃)의 자는 중거(仲擧), 호는 면호(眠湖)이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김신국(金藎國)의 아들이다. 1632년(인조 10)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1638년에 홍문록에 올랐으며, 이듬해에 지평(持平)에 임명된 뒤 부수찬, 수찬(修撰), 부교리, 교리(校理), 정언(正言) 등 삼사(三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42년(인조 20)에 지제교로 선발되었고, 사간원 정언(正言) 및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을 거쳐, 1644년에는 암행어사로 강원도에 파견되었다. 이어 사헌부 집의(執義)를 거쳐 1646년 예조참의(禮曹參議)가 되었다. 이때 소현세자빈(昭顯世子嬪) 강씨(姜氏)가 인조(仁祖)를 시해하려 했다는 혐의로 사사되었는데, 세자빈을 구제하려다 인조의 노여움을 사 파직당하였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왕을 호종한 공으로 도승지(都承旨)에 추증(追贈)되었다.
[위치]
충주시 대소원면 첨단 산업단지 조성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에서 가정마을로 진입하여 마을회관을 거쳐 중부내륙고속도로 교각 밑으로 빠진 다음 바로 우회전하여 500여m 정도 가면 큰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선산 관리사무소가 있고, 그 뒷산 산록에 김시번 묘가 있다.
[변천]
분묘를 이전한 적은 없으나 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관리가 소홀해져 석물 도난이 빈번히 일어난다고 한다.
[형태]
김시번 묘는 부부 합장묘로, 높이 170㎝, 지름 약 700㎝, 길이 약 1,100㎝이며, 1999년 말 구 묘갈과 문인석을 도난당하여 1995년 새로 마련한 묘표만 남아 있다. 묘표는 비좌개석의 형태로, 화강암 지붕돌은 69.5×49.5×36㎝, 오석으로 만든 비신은 42×18×117㎝, 대좌는 71×41×5㎝의 규모이다. 상석은 화강암으로, 152.5×90×33.5㎝, 혼유석은 87×37×10㎝, 향로석은 30×31×53㎝이며, 묘역 전체의 넓이는 약 495.87 m²(약 150평) 정도이다.
[금석문]
비제는 7㎝×7㎝의 해서체로 ‘청풍김씨증도승지시번공 배숙부인 남원양씨지묘(淸風金氏贈都承旨始蕃公配淑夫人南原梁氏之墓)’라 음기하였다.
[현황]
석물을 도난당한 후 묘표 외에는 그대로 놓아두어 묘역은 일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