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7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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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完山李氏貞烈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for Chastity of Wansan Yi Clan |
이칭/별칭 | 정부인이씨정렬비,임경업처정부인정렬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385-1[충열1길 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병구 |
성격 | 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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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비좌규수 |
건립시기/일시 | 1747년 |
관련인물 | 임경업|완산이씨 |
재질 | 대리석 |
높이 | 251㎝ |
너비 | 83㎝ |
소재지 주소 |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385-1[충열1길 6] |
소유자 | 평택임씨 종중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에 있는 조선 후기 임경업의 처 완산이씨의 정렬을 기린 비.
[개설]
20세에 임경업의 처가 된 진안대군 7세손인 완산이씨는 시부모에 효를 다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미덕을 보였다. 1637년(인조 15)에 임경업은 의주부윤에서 평안도의 병권을 장악하자 대의를 떨쳐 명나라와 소통을 하였고, 이를 알게 된 청나라에서는 임경업을 잡아 보내라 하자 명나라에 망명하게 된다. 이에 조선에서는 임경업의 가족을 대신 잡아 청에 보내자 완산이씨는 임경업의 뜻에 따라 1643년(인조 21) 9월 26일 자결하였다. 청나라도 이에 감복하여 시신을 정중히 돌려보내었다.
[건립경위]
1697년(숙종 23) 아들 임중번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관작을 회복시키고 시호를 내렸으며 부인의 죽음을 기려 정려를 내렸지만 화재로 불타버렸다. 후손들이 제대로 복구를 못하자 1745년(영조 21)에 충주목사 한덕필이 곡식을 내어 비석을 세우고 전말을 기록하였다.
[위치]
충주시 단월동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옆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비좌규수의 형태로 대리석으로 조성하였다. 비신의 크기는 83×27×215㎝이며 받침돌은 141×86×36㎝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금석문]
완산이씨 정렬비 앞면의 비제는 해서체 14×14㎝ 크기로 ‘대명충신임장군경업처정부인완산이씨정렬비(大明忠臣林將軍慶業妻貞夫人完山李氏貞烈碑)’라 음각되었는데 글씨를 붉게 칠하여 위엄을 보이고 있다. 뒷면의 음기는 4×4㎝의 크기로 정려를 내린 과정과 화재 이후 다시 복원, 건립한 내용을 음기하였다. 뒷면의 글은 자헌대부지중추부사 이세필이 기록하고 진사 이정하가 썼다.
[현황]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으며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옆에는 정조가 비문을 짓고 이병모가 글씨를 쓰고 윤동섬이 전액을 쓴 ‘어제달천충렬사비(御製達川忠烈祠碑)’와 1979년 이은상이 글 짓고 이상복이 쓴 달천 충렬사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