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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900894
한자 金汝岉
영어음역 Gim Yeomul
이칭/별칭 사수(士秀),피구자(披裘子),외암(畏菴)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충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성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충주도사
출신지 황해도 평산
성별
생년 1548년(명종 3)연표보기
몰년 1592년(선조 25)연표보기
본관 순천
대표관직 의주목사

[정의]

1592년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활약하다 순절한 무신.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裘子) 또는 외암(畏菴).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김훈(金壎)이며,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김류(金瑬)이다.

[활동사항]

김여물은 어려서부터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하고 구속받지 않는 성품으로, 활쏘기와 말 타기를 잘했으며 장수의 재략도 있어 문무를 겸비했다. 1567년(선조 즉위년) 20세로 진사가 되고, 1577년(선조 10) 알성 문과에 장원 급제했으나 성품 때문에 당로의 저지를 받아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못했다. 병조낭관(兵曹郞官)·충주도사(忠州都事)를 거쳐 1590년(선조 23) 담양부사, 다음 해 의주목사가 되었으나, 서인 정철(鄭澈)의 당으로 몰려 파직되고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김여물의 무용과 지략이 뛰어남을 알고 옥에서 풀어 자기의 막하에 두려고 왕에게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도순변사에 임명된 신립(申砬)김여물이 재능과 용기가 있고 충성스러운 인물임을 알고 자기의 종사관으로 임명해줄 것을 왕에게 간청하여 신립과 함께 충주 방어에 나서게 되었다.

1592년 4월 26일 충주에 도착한 신립은 부장들과 조령을 시찰했다. 이때 상주에서 패주해 온 순변사 이일을 만나 조령 방어의 어려움을 알게 되자 충주로 나가 배수진을 치기로 했다. 그러나 김여물과 충주목사 이종장(李宗張)은 이에 반대하여, 많은 적을 작은 병력으로 물리치려면 조령에서 지키는 것이 좋으며, 차선책으로는 높은 언덕에서 왜적을 역습하는 것이 좋겠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결국 신립을 따라 충주 달천(達川)을 등지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용전분투하였다.

전투의 위기 상황에서 신립김여물에게 “그대를 이 위지(危地)에서 살려볼까 하오.” 라고 하면서 피하기를 권했으나, 김여물은 “이 사람이 어찌 죽음을 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김여물은 이미 패할 것을 알고 아들 김류에게 “삼도에 근왕병(勤王兵)을 요청했으나 한 사람도 응하는 자가 없어, 우리는 맨주먹을 휘두를 따름이다. 남아대장부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바라는 바이지만, 나라의 치욕을 씻지 못하는 장심(壯心)을 갖고 그대로 재가 되어버리게 됨에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긴 한숨을 쉴 따름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또 가족에게는 “아비가 죽으면 일가는 모두 행재소(行在所)로 가되, 딴 곳으로 피난 가지 말도록 하라.”고 당부하는 글을 전하고 최후까지 싸우다가 왜적을 당하지 못하고 신립과 함께 강에 투신하여 순절했다. 다음 해 의관을 거둬 초혼하고 경기도 안산(安山) 동장리(洞長里)에 장사를 지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141번지에 있으며, 묘역에는 신·구 묘비 2기와 상석·향로석이 있고, 좌우에는 동자석·망주석·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광해군 재위 초에 충절로 정려되었으나, 인조반정 뒤에 포상에 의심이 간다고 하여 고쳤다가, 1639년(인조 17) 아들 김류의 청에 의해 다시 정표(旌表)되고, 뒤에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또한 묘역에서 서쪽으로 약 150m 지점에 1662년(현종 3) 건립된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높이 159㎝, 폭 73㎝, 두께 26㎝의 규모로 김상헌(金尙憲)이 비문을 짓고, 김좌명(金佐明)이 글씨를 썼으며, 이정영(李正英)이 전액(篆額)한 것으로, 안산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1788년(정조 12) 장의(壯毅)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1832년(순조 32)과 1892년(고종 29)에 신립 등의 영령과 함께 충주 달천의 순절한 옛터에 제사를 지내 충절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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