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0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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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元立 |
영어음역 | Gim Wonrip |
이칭/별칭 | 사탁(士卓),갈천(葛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성호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김성진(金聲振)이다.
[활동사항]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홍무적(洪茂績) 등과 인목대비의 폐비에 반대하는 복합상소를 올렸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금고형에 처해졌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다. 1627년(인조 5)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28년 승정원가주서, 1630년 사헌부지평, 1635년 사간원헌납이 되었다. 그 후 사헌부장령, 성균관사예, 성균관직강, 예조좌랑, 호조좌랑, 통례원우통례 등을 역임했으며, 외직으로 해운판관, 부안현감 등을 지냈다.
1636(인조 14) 능주목사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주로 가서 형 김원중 등과 각처의 의병을 규합하였다. 북쪽으로 진격하여 1637년 정월 4일 과천에서 청나라 군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세웠으나 얼마 후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삼키며 의병을 해산하였다. 1646년 사간원사간, 사헌부집의를 거쳐 1647년 함경도 종성부사로 재임 중 사냥을 하다가 사냥에 동원된 백성들이 청나라 병사에게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이로 인해 파직되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봉황리에 부인 하동정씨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묘역은 약 1300m² 규모로 묘 앞에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고, 망주석과 문관석이 각각 2기씩 있다. 묘비의 비문은 박세채(朴世采)가 찬하였다.
[상훈과 추모]
소무녕국원종공신으로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