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062 |
---|---|
한자 | 趙貞喆 |
영어음역 | Jo Jeongcheol |
이칭/별칭 | 성경(成卿),태성(台城),정헌(靜軒),대릉(大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일성 |
[정의]
조선 후기 충청감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성경(成卿)·태성(台城), 호는 정헌(靜軒)·대릉(大陵). 증조할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趙泰采), 할아버지는 조겸빈(趙謙彬),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조영순(趙榮順), 어머니는 김시눌(金時訥)의 딸이다.
[활동사항]
1751년(영조 27)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난 조정철(趙貞喆)은 1775년(영조 51)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관직에 올랐다. 1777년(정조 1) 별감 재직 중에 강용휘(姜龍輝) 등이 정조를 시해하려한 사건에 연루되어 참형에 처해질 뻔했으나 전 우의정 조태채(趙泰采)의 증손자임이 참작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제주도에서 장기간 유배 생활을 하고 이후 정의현, 추자도, 광양현, 토산현으로 유배지를 옮겨 다닌 끝에 1805년(순조 5) 유배 28년 만에 풀려나 복권되었다. 1809년 사간원정언을 거쳐 1811년 제주목사겸전라도방어사로 유배지였던 제주도로 부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있으면서 제주성을 개축하고 감귤 제배를 권장하는 한편 육지에서 들어와 노비가 된 자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부역의 부담을 줄였다.
1812년 동래부사로 전임하고, 1813년 충청감사가 되어 충청감영이 있는 공주로 부임해 활동했다. 1816년 이조참의, 1822년 이조참판, 성균관대사성, 1824년 형조판서, 예조판서, 1826년 형조판서, 의정부좌참찬, 1827년 대사간, 1828년 형조판서, 1830년 대사헌을 역임하고, 1831년(순조 31) 지중추부사로 있다가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제주도 유배지에서 지은 시를 조정철 자신이 직접 편집하여 1824년 간행한 『정헌영해처감록(靜軒瀛海處坎錄)』 4권 2책이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