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4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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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燦 |
영어음역 | Chae Chan |
이칭/별칭 | 백광운(白狂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채찬은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당시 이강년 부대에서 활동하였으며, 1910년 이후에는 남만주로 망명하였다. 통화현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동창생 신용관(辛容寬)과 같이 백서농장(白西農場)을 경영하면서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3·1운동 이후 서로군정서에 들어가 의용군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평안북도 강계군 문옥면주재소를 습격하고 친일파인 후창군수 권응규(權應奎)를 제거하는 공작을 완수했다.
1921년에는 관전현·즙안현·통화현·임강현·유하현 등에 있는 친일기관인 일민단(日民團)·보민회(保民會)·강립단(强立團) 수십 곳을 습격하여 제거하였다. 또한 의용단(義勇團) 결사대 수백 명을 조직하여 강계(江界)의 어뢰면주재소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1922년 8월에 남만주에 조직된 통일조직인 통의부에 가담하였다가 복벽파와의 갈등으로 분열을 겪게 되자 남만의용군 대표로 상하이 임시정부에 파견되어 김승학(金承學) 등과 함께 참의부 등의 조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군민 통할조직인 참의부의 참의장으로 취임하여 압록강 연변의 동포사회를 지도해 나가다가 1924년 정적에 의해 암살당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